======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 평점 | ★★★★ | | 한줄평 | 하고 싶은 걸 할 때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하고자하는 열망이다 | {{:book:519.jpg?nolink |}}미국의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AT(애팔래치아 트레일)를 66세에 처음 도전하고 77세까지 3번을 완주한 전설의 하이커다. 이때가 1955년이라는 걸 고려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GPS 나 변변한 지도도 없이 오로지 표식만 보고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길을 걸은 것이다. 책 표지에 나온 사진을 보면 더더욱 믿기힘들 정도인데, 배낭이 아닌 자루를 왼쪽 어깨에 지고 오른손에는 나무지팡이를 들고 걷는 모습이다. 유명세를 타면서 기자들이 그녀에게 던졌던 질문 그리고 저자 역시 궁금했던 질문은 '왜 걷느냐' 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엠마 스스로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기자들의 한결같은 질문에 매번 다른 대답을 했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맞다. 나또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대단한 일을 해낸 것에 대한 뭔가 대단한 동기가 있어야하고, 있을거라고 예상하지만, 사실 엠마는 최초의 AT 를 완주한 여성이 되기 위해(그녀의 딸이 얘기한) 트레킹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살아온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편으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구타를 당하고, 11명의 자녀를 키우며 생계를 꾸려가야했던 60대 전반까지의 삶. 만일 평범하고 정상적인 결혼 생활과 가정을 꾸렸다면, 엠마가 트레킹을 시작했을까? 여기에 대해 저자는 '그녀가 무언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기보다, 오히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걷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 또 흥미로운 점은 생존해있는 엠마의 자녀와 친척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토록 대단한 일을 해낸 엠마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담담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60대 중반의 여성이 가족에게 AT 트레킹에 대해 알리지 않고, 6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이런 반응의 이유는 엠마의 행동(숲이나 길을 걷는)이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고, 단지 거리가 길어진 것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엠마가 평범한 가정 생활을 했다면, 엠마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을지. 점차 엠마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되고, 미디어에 출연하기도 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녀가 인기를 얻기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도 지구상에는 엠마처럼 먼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중에는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아래 내용에 공감한다. 만일 얼 셰퍼 이후 트레일을 완주한 1만 1000명 이상의 도보 여행자들에게 MBTI 테스트를 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완주하지만 실제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현실을 보면 설득력이 있다. 60대 여성이 22,500km 걸을 수 있던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60 년간 그녀의 삶에서 응축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것이 도보여행으로 분출된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엠마의 사례다. 다른 사람이 엠마와 동일한 삶을 살았다면, 에너지를 다른 곳(도보여행이 아닌)에 썼을 것이다. 단지 당시 도보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고, 여러모로 열악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엠마가 가졌던 에너지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독자로서 엠마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불행했던 과거에 매어있지 않고, 하고 싶은 것에 몰입했고, 즐겼다는 점이다. ===== 기억에 남는 구절 =====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엠마가 길을 떠나기 93년 전인 1862년 6월에 이런 현상을 이미 예견했었다. 애틀랜틱 먼슬리를 통해 발표된 에세이 산책에서 소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날 이렇게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 상황에서 땅이 주는 가장 고마운 점은 그것이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풍경의 주인은 없으며 사람들은 누구나 걸어서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 언젠가 이런 자유로운 땅에도 주인이 생겨나고 이른바 '유원지'라는 이름으로 뒤바뀌게 될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제한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울타리가 쳐진 땅이 늘어나고 여러 매혹적인 기계장치들이 발명되어 인간을 좁은 도로 안에 가두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대지를 걷는 일은 다른 이의 사유지를 침입하는 사악한 행위로 간주되지 않을까. 무언가를 독점적으로 누리려 한다면 인간은 결국 진정한 즐거움으로부터 스스로를 배제하게 된다. 그런 악마의 날들이 우리를 덮치기 전에 우리가 갖고 있는 기회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기자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엠마가 대답했다. "그냥 재미 삼아서요" 내기 때문이든 명성을 얻기 위함이든, 아니면 그저 자연에 대한 도전이나 사랑의 상처를 잊기 위한 노력이든 걷는 것으로 유명해진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신들만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 목적은 세상에 알려졌다. 왜 그 사람은 걷기 시작했는가, 왜 문명사회의 보금자리를 떠났는가, 왜 집과 사무실, 자동차와 같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졌는가. 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엄청난 거리를 걸어 스스로를 세상에 개방하고 예상치 못한 수많은 경험을 하는 것, 구태여 위험천만한 자연의 분노와 맞서는 것 등은 사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엠마 게이트우드는 사람들이 왜 예순이 넘은 나이에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섰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슬쩍 얼버무리곤 했다. "자녀들은 이제 다 장성해서 집을 떠났기 때문"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한 번에 완주한 여성이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고 들었기 때문" "자연을 사랑한다" "트레일을 걷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서" "나는 언덕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또 그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도요" 엠마가 한 대답들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녀의 동기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마치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의 대답을 찾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모든 대답들이 다 진실일 수도 있다. 또 세상을 탐험하는 일이 곧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얼 셰퍼 이후 트레일을 완주한 1만 1000명 이상의 도보 여행자들에게 MBTI 테스트를 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0대 여성이 그렇게 여러 번 같은 산에 오르다 마지막 하산하는 길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자신이 무척 놀라워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이 든 노인들과 산 사이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걸까?" 이제는 장성한 게이트우드 집안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한 일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초연한 모습이었다. 무려 다섯 달 동안 방울뱀과 갱단이 득실거리는 숲속을 지나 다친 발목과 부서진 안경만으로 해발 1600 미터가 넘는 산을 올랐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집안의 기질 자체가 그런지도 몰랐다. "우리는 어머니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언제나 스스로를 잘 돌봤으니까요" "저는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게 정상이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자식들이 걱정도 안 되냐?' 고 물어요." "그럼 이렇게 대답합니다." '걱정 같은 거 안하는데요' "어머니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게 어머니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저희는 그저 응원할 뿐이에요." "우리 어머니는 그저 보통 사람이에요." "글쎄,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어요. 처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어서 완주했다는 거 말입니다." 1957년 5월, 머리 프링글이라는 이름의 기자가 '아메리칸 머큐리'에 "최근 걸어본 적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기사 하나를 올렸다. 기사에서 그는 미국인들이 탈 것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지금보다 더 적게 걸었던 시절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토마스 제퍼슨의 명언인 '모든 운동 중에 걷기가 최고' 라는 격언을 지금 세대만큼 따르지 않은 적도 없었다. 집이란 그녀에게 진정한 안식처라기보다,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한 기지 같은 곳이었다. 엠마는 별다른 준비 없이 가볍게 트레일을 완주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런 그녀의 방식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도보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장비는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바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정말 다른 것들은 전혀 필요 없을 때가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해한다. 게이트우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녀가 왜 그 먼 길을 걸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유가 바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야외에 나가 도보여행을 하며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고 따뜻한 인간관계와 육체적인 도전, 인간애, 고독, 그리고 생존 문제를 고민하고 싶어 한다. 나는 엠마가 보여준 다양한 반응이나 대답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엠마는 자신이 왜 자연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지 진지하게 혹은 오래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말처럼 처음에는 그저 저 언덕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하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무언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기보다, 오히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걷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수없이 반복된 질문에 대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여러가지 대답들 가운데 한 가지 공식적으로 기록된 선언과도 비슷한 문장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