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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점 | ★★★★ |
| 한줄평 | 미국에서의 우편배달부는 상대적으로 특별하다 |
{{:book:528.jpg?nolink |}}20년 넘게 대기업의 전문직에서 일하던 저자가 코로나시기에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고(당시 나이 50세), 건강보험을 유지하기위해 자신이 살던 지역(고향에)에 우편배달보조원으로 일하며 적은 글이다.
배경 장소가 미국 그리고 동부 애팔래치아 시골마을(버지니아)이라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 책 표지에 나온 USPS 차량이 반가웠다. 일반 차량에 비해 폭이 좁아서 도로의 갓길로 다니는 모습을 자주봤었다.
'시골의 우편배달부' 라고 하면 낭만적인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춥거나 더운 날씨를 견뎌야 하고(우체국에서 지급되는 물품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본인이 직접 준비해야한다), 개와 총을 지닌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은 누구나 총기소지가 가능한 나라다.
하루가 멀다하고 총기사건이 발생하지만, 규제에 동의하지 않는 미국인들과 정부를 보면 이해가 안간다. 정말 지금이 서부개척시대라고 생각하는 건가? 시골 외딴 집에 말을 타고 총으로 무장한 카우보이들이 쳐들어와서 집과 물건을 빼앗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자 역시 이런 현상에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장을 한다면, 자신도 무장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한국이 총기규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책에 따르면, 우편배달원은 일하는 중에는 총기소지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저자는 개 퇴치 스프레이와 우편배달부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모자와 조끼를 항상 착용한다.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진상손님들과의 에피소드는 상대적으로 소소하게 느껴졌다.
그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화이트컬러 직종을 구하면서 1년이 되는 시점에 퇴직한다. 직종을 구하지 못했더라도 그가 계속해서 우편배달부로서 일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 기억에 남는 구절 =====
멀리 있다는 건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뜻이다. 캘리포니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면 그 황금의 주를 이렇게 상상하기 쉽다. 온갖 성 정체성의 사람들이 활개치고 다니고 정치적 올바름에 미친 디스토피아, 노숙자 떼거리와 샤도네이를 홀짝이는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땅. 웨스트버지니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면, 그곳을 이렇게 상상하기 쉽다. 급류 래프팅과 광산 체험놀이를 곁들일 수 있는 가난한 백인들의 살아있는 역사 보호구역. 피임이 불법이고 은밀한 총기 소지가 필수인 곳. 두 이미지 모두 일말의 진실을 품고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바,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미국을 미래로 이끄는 최전선이고, 미국인의 강인함은 웨스트버지니아의 깊은 산속에서 솟아난 샘물에서 흘러나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공포를 느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2007년 아버지가 총에 맞은 이후로 그런 죽을 것 같은 공포는 처음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이미 총격이 끝난 뒤였지만 말이다.
2007년 4월 16일 아침, 잠에서 깨어난 조승희는 월터 22구경 LR 권총과 9밀리 글록 19, 수십 개의 탄창, 그리고 이미 법적으로 판정받은 정신적 장애와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 전력때문에 애초에 구입할 수 없어야 했던 권총들로 무장했다. 그는 버지니아텍 기숙사에서 두 사람을 먼저 살행한 뒤 두시간 동안 캠퍼스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죽이고 아버지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우리 우편배달부는 무기를 소지하면 안 됐다. 연방 소유 땅에서도, 정부 소유 차량에서도 절대 금지였다. 개인 소유 차량에 두는 건 좀 애매했다. 하지만 설령 그게 합법이고 허가증까지 있다 해도 근무 중에는 개인 차량 안에 두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주 담당구역인 10번 구역에는 총을 가지고 다닌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건 미친 짓이었다. 거기엔 공식 정부 소유 차량을 몰고 다녔고, 그 구역은 거의 사무실 단지와 아파트 단지들이었기 때문이다. 거긴 밀집된 교외지역, 그야말로 평범한 동네였다. 하지만 산골로 들어간다면? 거긴 완전히 노상강도의 놀이터였다. 그 긴 구역을 돌면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기댈 무기가 찰진 욕밖에 없다면 그게 더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그런 환경에서는 총을 들고 다니는게 전혀 이상할 게 없어보였다. 오히려 생득권처럼 느껴졌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게 자연권이든 역사적 우연이든, 일단 총을 끌어들이는 순간 누군가의 창자나 폐나 두개골에 구멍이 날 확률이 0에서 0이 아닌 상태로 바뀌게 된다. 무에서 유로 넘어가는 건 도약 중에서도 가장 큰 도약이다.
그게 현재 미국 시골에서의 삶이다. 누군가 나를 쏠 확률이 상시적으로 있는 삶. 이것은 독재에 대한 저항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서부 활극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해마다 4만 5000명 가량이 총에 맞는다. 20여년간의 베트남 전쟁 때 전사한 미군의 전체 숫자에 맞먹는 규모다. 9.11 테러 이후 20여년 동안 전 세계에서 벌인 대테러전에서 사망한 미군 7700명보다 수만 명이나 더 많은 숫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세상에, 그리고 내 주변에 총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난다면, 나 역시 늘 무장하고 있는 쪽을 택하게 될 것이다. 그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무장하고 있고, 나는 그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이야기, 즉 나는 건강보험을 위해 이 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나로 하여금 한 해 동안 우편물을 배달하게 만든 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지금 장난하나.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해고되자마자 그냥 신청만 하면 됐던 거다. 이 모든일을 하나도 겪을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저 조용히 앉아 생각했다. 그럼 이 모든 건 대체 뭐였을까?
그건 내가 우편배달부가 되려고 그랬던 거였다.
내가 누군지 혹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우편배달에 나선 건 아니었다. 건강보험이 필요했고, 어쩌면 덤으로 새로운 모험 같은 것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일하는 경험이 나를 다시 가족과, 마을과 연결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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