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소 즐겨 읽는 분야 중에 여행 에세이가 있다. 주로 여행 정보를 얻기위해 읽는데, 이책은 주간지의 신간코너에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읽게 되었다.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다보니, 거의 대부분 정형화된 틀이 있다. 여행 지역이나, 교통 수단, 기간은 다르지만, 이 틀(?)은 거의 대동소이 하다. 그래서 지금껏 많은 여행 에세이를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책들은 몇 권 없다.
이런 책들은 기존의 틀과 다른 형태이거나, 특이한 여행 소재를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나는 걷는다 시리즈가 있다. '나는걷는다①아나톨리아횡단, 나는걷는다②머나먼사마르칸트, 나는걷는다③스텝에부는바람' 총 3권으로 이루어진 대작이지만, 사진 한장 실려있지 않다.
'여행 에세이에 사진 한장 없다니'
처음에는 의아했다. 무릇이 여행 에세이라 하면, 멋진 사진을 보는 재미와 함께 술술 읽히는 맛(?)으로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총 3권으로 이뤄진 나는 걷는다 시리즈를 봤을 때, 과연 사진 한장 없는 여행 에세이를 독파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이것은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저자의 설명만으로 독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실보다는 득이 훨씬 더 컸다.
이런 면에 볼 때, 이 책은 나는 걷는다 시리즈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진이 한장도 없다는 것'
대신 저자가 그린 그림이 실려있다. 최근에 그림에 관련한 책을 몇 권 보면서, 사진과 그림의 차이점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꼭 그림을 잘 그려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시간이 오래 흘러도 그 때 당시의 느낌을 금방 알아낼 수 있으리라. 어찌보면 사진과 유사해보이지만, 그림에 비해 화자의 느낌을 더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진은 여러 사람이 찍더라도 대부분 비슷한 느낌을 주는 반면, 그림은 화자에 따라 다양한 작품이 나온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여러나라를 여행했고, 특히 남미 페루에서 장기간 체류한 경험이 있다. 이 책에서는 흔히 있어야 하는 여행한 루트, 볼거리, 먹거리등에 대한 소개를 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때마다 그렸던 그림들을 실었다. 실린 그림들이 딱히 잘 그린 편은 아니다(순전히 나의 기준으로 볼 때). 하지만, 한장한장에 개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저자, 형, 누나, 어머니, 아버지)을 모두 동물에 비유해 그린 점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선뜻 그림을 시작하기 망설이는 나 같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여행에세이의 새로운 틀을 만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