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알게된 건, 아마 수년 전으로 기억한다. 한비야 님의 '그건 사랑이었네' 라는 책에서 소개한 추천 도서 목록에 이 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이 책 말고도 '월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같은 주옥같은 책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이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여러번 드나들었다. 하지만, 절반을 채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였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은 흔히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술술 읽히는 책이라고 해서, 또 그렇지 않은 책이라고 해서 좋고 나쁜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껏 나의 독서 경험을 비춰봤을 때 각각 다음과 같이 구분지어 볼 수 있다.
술술 읽히는 책
책의 내용에 몰입하게 되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읽어버리는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다.
책의 내용이 뻔해서 굳이 시간을 들여 한 페이지 전체를 정독하지 않더라도, 쉬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이다. 대개 자기계발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술술 읽히지 않는 책
문자 그대로의 뜻을 가지고는 금방 이해가 안되는 글. 또는 앞선 글의 스토리를 이해하고 따라가야만 비로소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글. 대체로 이러한 책들은 몇 번씩 곱씹어서 읽어봐야하고, 이전 페이지를 뒤적이며 봐야 하는 책들이다. 또한 처음에 읽었을 때와 두번째 읽었을 때는 다른 느낌을 준다.
어려운 개념을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여 쓴 글. 완독을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술술 읽히지 않는 책의 1번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종류를 구분해보자면 어떤 것일까? 자서전 + 자기계발서에 가까울 것이다.
저자인 헬렌 니어링은 미국의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1900 년대 초에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학술 모임에 참여하면서 사회운동과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형제, 자매 중에 유일하게 채식 주의자가 되었다(뭔가 범상치 않았다는 얘기!). 그녀는 모임에서 알게된 크리슈나무르티 라는 인도 청년을 만나게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 청춘 남녀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철부지들의 불타는 사랑이 아니었으며, 그들 자신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회 전반의 활동을 더더욱 중요시하였다. 마치 그들의 관계는 절대자와 그를 추앙하는 신도라고나 할까.
아마도 이러한 특별한 관계는 그들이 만났던 모임과 그 때 당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었으리라(그들이 살았던 20세기 초는 이념대결로 인한 전쟁과 이로 인한 혼란이 전 세계를 휘몰아 친 시기였다).
그들의 관계가 그러했듯,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얼마 후, 그녀는 스코트 니어링 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당시 20 대였던 그녀는 40대의 돌싱이었던 그를 사랑하게 된다. 어떤 점이 그녀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했을까?
스코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되었고, 여러 권의 베스트 셀러 책을 썼으며, 결혼하여 자식도 있었던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180도 바뀌게된 한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진 사회주의 이념이었다.
그는 그가 가진 신념을 굳히지 않았으며, 덕분에(?) 교수직에서도 쫒겨나고, 그가 썼던 책들은 절판이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와 이혼하기에 이르렀고, 더이상 그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헬렌을 만난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오로지 정신적인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으며, 서로를 구속하지 않았고, 서로 존중하고 존경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자연과 동화된 인생을 살았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마치 월든의 소로우 처럼 말이다. 참으로 부러운 부부다.
스코트는 99 세까지 장수했다. 그가 그토록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순수하게 자유의지에 의한 일로서 말이다.
스코트와 헬렌의 자서전을 통해 책 제목처럼 얼마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켜왔던 신념들이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없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들답게 살았다는 것이다. 외부의 환경이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다음은 책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너는 물론 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 정부가 법을 파괴하는 한 패거리의 법률가 집단 손에 떨어졌고, 그 명목상의 지도자가 리처드 닉슨이었으며 현재도 그렇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다. 워터게이트 조사에서 보듯이 국내에서나 국제사회에서 이 집단은 CIA 를 이용해 헌법을 무시하고 미국법을 파괴했으며, 조약을 위반하고 공공기금을 제멋대로 쓰면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한편 암살을 꾀하고 선전포고도 없이 불법적인 전쟁을 도발했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당신은 사는대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나누어 했습니다. 나는 집안일을 맡아 꾸려나가고, 그이는 농장과 바깥일을 합니다. 그이는 집안일을 돕고 나는 바깥일을 돕습니다.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 팀입니다. 우리는 재산을 따로 관리하고 저마다 자기 통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재정 문제를 서로 독립해서 다룹니다. 이따금 우리는 서로 돈을 빌리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하는데, 공동의 은행구좌를 가지고 기록하여 일 년에 몇 번씩 정산을 합니다. 우리는 성격상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든 이 기묘한 쌍은 40년 동안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같이 갈 것입니다.
이런 걸 천생연분이라고 해야할까.
일은 사람이 늙는 것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일이 곧 내 삶이다. 나는 일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은 결코 권태롭지 않고 늙지 않는다. 희망과 계획의 자리에 후회가 들어설 때 사람은 늙는다. 일과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늙음을 막는 가장 훌륭한 처방이다.
나는 바닷가에 서 있다. 내 쪽에 있는 배가 산들바람에 흰 돛을 펼치고 푸른 바다로 나아간다. 그 배는 아름다움과 힘의 상징이다. 나는 서서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맞닿는 곳에서 배가 마침내 한 조각 구름이 될 때까지 바라본다. 저기다. 배가 가버렸다. 그러나 내 쪽의 누군가가 말한다. '어디로 갔지?' 우리가 보기에는 그것이 전부다. 배는 우리 쪽을 떠나갔을 때의 돛대, 선체, 크기 그대로이다. 목적지까지 온전하게 짐을 싣고 항해할 수 있었다. 배의 크기가 작어진 것은 우리 때문이지, 배가 그런 것이 아니다. '저기 봐! 배가 사라졌다!' 고 당신이 외치는 바로 그 순간, '저기 봐! 배가 나타났다!' 하며 다른 쪽에서는 기쁜 탄성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 방법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이가 품위있게 그렇게 하도록 도왔다.
메인으로 이사온 1,2년 뒤부터 우리는 장의사에 돈을 주고서 미리 우리 자신의 화장에 대비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스코트가 '주위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내게 남긴 지침을 따르는 것인데, 이 지침은 1963년에 처음 쓰고 1968년에 그이의 이름 머리글자를 써 넣었으며 1982년에 다시 그렇게 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요망 사항을 기록해 두기 위해 쓴다.
1. 마지막 죽을 병이 오면 나는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3. 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4.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5.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6.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없다.
7.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8. 주사, 심장 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9.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10.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11. 장례 절차와 부수적인 일들.
12.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 밖에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불러들여서는 안되며, 어떤 식으로든 이들이 내 몸을 처리하는데 관여해서는 안된다.
13.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내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스프루스 나무나 소나무 판자로 만든 보통의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된다.
14.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내가 요금을 내고 회원이 된 메인 주 오번의 화장터로 보내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15.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죽음과 재의 처분 사이에 언제, 어떤 식으로든 설교사나 목사, 그 밖에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된다.
16.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만약 헬렌이 나보다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스피릿 만을 바라보는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주기를 바란다.
17. 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이러한 요청들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