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읽었던 책들(철들고 그림그리다, 그림 여행을 권함)을 통해 드로잉에 대해 부쩍 관심이 늘었다. 우선 드로잉을 연습할 수 있는 책을 한권 샀고, 드로잉 관련 수업도 신청할까 기웃거리고 있다.
최근에 들었던 사진 수업에서 강사였던 사진가는 자신이 사진 콘테스트에 심사위원으로 자주 참석을 하는데, 요즘 사진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 쓸만한 사진들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사진들마다 개성이 없이 거의 비슷비슷 하다는 것.
사진기의 보급이 늘어나면서(다시말해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의 보급),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게 되었다. DSLR 의 보급 또한 마찬가지다.
사진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뷰파인더 창을 보고, 내가 찍고 싶은 화면을 담았다 싶으면 셔터를 누르면 된다. 하지만 나중에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찍었을 당시의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사진기는 본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렌즈를 통해 왜곡이나 효과를 줄 수는 있지만, 본시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다. 누가 찍든지 말이다. 1% 의 가감없이.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더라도 사진만큼 똑같이 표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 중에서는 이제 더이상 그림 같은 예술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림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사진이 디지털이라면, 그림은 아날로그다. 사진은 빠르지만, 사진은 느리다. 사진을 찍는데는 불과 몇 초 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림은 적게는 수십 분에서 몇 달까지의 시간이 소요된다.
사진을 찍는데는 사진기가 필요하지만(제대로 찍기위해서는 고가의 렌즈와 관련 장비들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펜(물감)과 종이(스케치북)만 있으면 된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지금에와서 보면 기억에 남는 사진들은 별로 없다. 뭔가에 쫓겨서,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아야 겠다는 생각에 마구 셔터를 남발했던 것 같다. 여행의 감상보다는 사진을 찍는 자체가 우선이었다.
책에 소개된 스케쳐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스케치를 통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케쳐들의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소개한다.
런던 브리지에서 벨베데르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잠에 빠진 이 남녀를 보았다. 나는 재빨리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불친절한 어투로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라고 묻는 바람에 나는 긴장했다. 나는 보다 친절하게 “스케치요” 라고 대답하고 내 스케치북에 있는 그림을 몇 장을 보여주었다. 그는 불쾌한 듯 한숨을 쉬더니 “왜 그리는 건데요?” 라고 물었다. 나는 그냥 “제 삶이니까요. 저는 매일 스케치를 합니다.” 라고 말했다. 내가 그림을 계속 그리자 몇 분 후 그가 말했다. “우리 그린 것 좀 보여주세요.” 내가 그림을 보여주자 그의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변했다. “우와!” 그러더니 그는 내게 공격적으로 말한 것을 사과했다. 나는 그림을 스캔해서 그에게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스케치의 기쁨에 가득 찬 채 기차에서 내렸다.
만일 그림이 아닌 사진이었다면, 상황은 어떠했을까? 위 에피소드 말고도 스케쳐들은 대게 공공장소에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과 시선을 받는다. 스케쳐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 그곳 사람들과의 부드러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같은 장소, 물건을 보더라도, 내가 그린 그림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다. 게다가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더할 수 있다.
흔히, “남는 건 사진 뿐이다”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더 남는 건 그림 뿐이다” 라는 말을 하고 싶다.
PS. 스케쳐들 중에는 건축가가 생각 외로 많았다. 아무래도 어반 스케치라는 것이 도시의 건물이나 시설물을 주로 그리기 때문이 아닐까. 각 나라별 도시와 그곳에 살고 있는 스케쳐들을 소개하는데, 서울에서는 나이가 지긋하신 노년의 스케쳐 두분이 소개되었다. 그러고 보면, 스케쳐는 남녀노소, 직업불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