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 |
| 한줄평 | 사람의 인생을 객관화할 수 있는가 |
이 책을 알게된 건 책 라디오 팟캐스트의 신간 서적 코너에서 였다.
'쓰레기장에서 찾은 일기장 148권' 이라는 부제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를 써온 저자의 세번째 책이다.
저자의 친구들이 우연히 대학근처의 쓰레기 장에서 버려진 일기장(무려 148권)을 발견하고 이를 전달받아 읽어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기를 쓴 사람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등을 알기 위한 호기심으로 필체 분석가, 탐정을 만난다. 그리고 4~5 년간의 탐구를 통해 이름과 나이, 외모, 사는 곳 등을 알게 된다. 1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이어진 일기는 필체와 단어, 문체들이 바뀌어 갔다.
독자로서 과연 일기를 쓴 주인공이 누군지에 대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은 몰입감 더해주었다. 일기를 쓴 사람(로라)이 여성이라고 밝혀졌을 때, 또 일기장에 가장 많이 적혀있고, 연인 관계라고 생각했던 존재 'E' 가 사실은 주인공보다 50세나 많은 여성이라는 점이 밝혀졌을 때, 그리고 죽은 줄로 알았던 로라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약간 놀랐다.
이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로라를 만나 동의를 얻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자는 그녀를 만난다.
개인적으로 첫만남에서 나눴던 대화가 가장 흥미로웠다.
일기를 통해본 로라의 인생은 뭐하나 이뤄놓은 것이 없는, 딱히 도드라져보이는 것이 없다. 오히려
젊은 시절, 예술에 적성을 발견하고 시도하지만, 돌연 도서관사서, 가정부 겸 요리사로 일하다가 해고된다.
이후 학문 연구자의 가정부로 20여년간 일하고, 그가 사망하자, 심지어 집에서 쫒겨난다. 또 10대에서 60대까지 사랑의 결실을 맺어보지 못했고, 결혼하지 않았다. 마음을 터놓는 친구도 없었다.
이런 인생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 저자와 만난 로라는 일기를 통해 알고 예상했던 인물과는 많이 달랐다.
60대 이후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흔히 생각하는 그 나이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보였다.
문득, 로라의 일기장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물론 발견되든 아니든 로라의 인생(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로라가 인정할지(또는 안할지는)는 모르지만, 일기가 그녀의 인생에 꽤나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수많은 로라(어쩌면 나를 포함한)의 삶이 꽤나 괜찮은 미래인 것 같아 한편 안심이 되었다.
이 시기의 일기를 보면, 로라가 일기를 쓰기는 했지만 읽지 않았다는 흥미로운 생각이 솟는다. 그녀는 페이지를 말로 가득 채웠지만 그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 못했다.
나도 내가 쓴 일기를 나중에 다시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남에게 보일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래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대부분의 일기는 다시 읽어보지 않는다(나중에 언젠가 읽어보리란 생각은 한다).
이 일기의 목적에 대한 내 최근 해석은 로라가 자기 존재를 기록하기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뇌를 보호하기 위해 쓰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주제가 반복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이 같은 일기장에 정확히 똑같은 문장으로 같은 말을 이미 열다섯 번이나 했음을 잊기 때문이 아니라, 종이에 말들을 되풀이해 때려댐으로써 없애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비참한 생각들을 없애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바람에 도리어 그 노력이 인생을 없애고 있다. 젊었을 때 로라는 글을 잘 썼으나, 재능을 살리지 못했다는 일기를 쓰느라 재능을 발전시키는 데 썼어야 할 시간을 날렸다. 글쓰기가 그녀의 글쓰기를 망가뜨렸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산책을 나갔다오면 한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산책보다는 일기를 쓰는 것으로 같은 효과를 얻는 사람(로라)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산책을 다녀오는 시간 때문에, 재능이 낭비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기는 우리에게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간다는게 얼마나 벅찬 행위인지 가르쳐준다. 그곳은 끔찍한 장소다. 그 모든 반복. 따분해서 죽어버릴 때까지 한 지점을 곱씹고 곱씹을 뿐 제대로 된 분석이라곤 하지 않는 끝없는 분석. 한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야기를 살아 있게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나는 로라가 일기를 쓴 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기가)누군가를 이해시키려고, 나 이외의 누군가가 볼 것임을 전제하고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것이다.
여기 로라 프랜시스가 잠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데도 가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E 가 제안한 비문
로라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E' 는 이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일기를 썼고(이외에 많은 일도 했지만, 가장 중요하다), 직업과 상황에 따라 여기저기 옮겨다녔다. 사랑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가장 최근에 그녀를 만났을 때, 60대에 쓴 일기장(저자가 가지고 있는 최신의)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말한 것이다.
내가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외계 존재라면, 문학이나 영화나 음악 따위에 신경쓸 것 없이 곧장 이 일기장의 주인에게 가겠다. 인생은 결코 소설이나 노래에서처럼 정제되고 단순하지 않다. 일기 주인은 매일의 중얼거림을 다룬다. 사람들이 24시간 내내 휴대용 컴퓨터를 착용하고 다니며 생리적 데이터를 기록하고 삶을 촬영하기 40년 전, 그는 그보다 통찰력 있는 작업을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매일 기록하고, 아무런 기교도 거짓된 드라마도 없이 쓰는 것. 말하자면 내면으로부터 쓰는 것
사실 로라가 무려 40년의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긴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현대 인간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문명의 기술들은 인류가 처음 지구에 나타나고 이들 중 누군가가 기록한 정보의 축적으로 가능했다. 로라 같은 사람이 어느 시대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만일 로라의 일기장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 책의 출간과 상관없이 로라는 그녀가 평생에 살아오던 삶을 기존에 가져왔던 생각과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