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낮잠

평점 ★★★
한줄평 인생에 있어서 낮잠 같은 소소하고도 평화로운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인도방랑 이후의 작품으로 한 나라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그동안의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짤막한 에세이로 엮었다.
이 책이 출간된게 2011년이니, 원서가 나온 건 더 이전일 것이다. 저자가 당시 세태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했던 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건 없어보인다(오히려 더 심해졌다).

널리 알려진 이런 여행 에세이들을 보면, 순간의 한 장면을 보고서, 1쪽 분량의 서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란다. 정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어울린다.

무슨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상이 지나는 가운데, 현미경을 갖고 들여다보는 글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 좋다.

기억에 남는 구절

불황이 젊은이들의 장기 해외여행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양이다. 들어보니, 여행을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 예전처럼 돌아온 뒤 금방 재취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반년이나 여행을 하다보면 인생 전체가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토록 놀라운 경험이 한낱 아르바이트 때문에 취소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정도 고난 때문에 바뀔 일정이라면 아무리 긴 여행을 하더라도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내 지인 중 일년 정도 세계를 돌고 온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의 일정에 일체 실패가 없었다는 사실을 듣고 놀란 기억이 난다. 여행의 사전 조사가 놀랄 만큼 치밀했던 것이다. 이제부터 갈 나라나 거리의 사정을 거기 사는 사람처럼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예습해서 예정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젋은이들이 80년대 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것 같다. 지금의 청년들은 대학 수험이라는 목적에 맞춰서, 인생의 대부분을 '실패하지 않기 위한 예습'에 사용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여행 방식에도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는 부와 수확을 축적하며, 더 많은 부의 확장을 위해 투자하라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리고 부 덕부에 얻은 여가 시간도 보다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확장 원칙은 근대 유럽에서 발생했고, 이윽고 자본주의로서 개화한 뒤 세계를 석권했다. 그리고 지구는 수탈되다 못해 점점 망해가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본디 토착문화에서 부란 축적하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고 연소하는 것이었다. 부를 분배하여 세계의 질서를 지킨다는, 전혀 다른 부류의 지혜가 존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