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만지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겪게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적는다. 훗날 그때를 추억하게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Marvell 에 들어와서 처음 와보는 외국 출장, 상하이에 왔다. 솔직히 출장에 대한 환상과 설램은 깨진지 오래지만, 처음으로 엔지니어가 아닌 AE 로 가는 것이라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은 들었다.
중국은 처음이라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TV 에서나 보아오던 중국의 모습과는 달리, 미국 실리콘 벨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통근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IT 에 문외한이라도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회사들이 모여있는 곳에 Marvell 상하이 오피스가 있었다.
여러 개의 건물에 나뉘어져 있다고 했는데, 모두 합쳐 2000 여명이 된단다. 한국 오피스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출장 온지 3일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름의 성과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실 내가 앞서 장황(?)하게 쓴 것은 지금부터 써 내려갈 에피소드를 위한 것이다.
상하이 오피스에서 wifi 드라이버 팀의 리더인 stone 이라는 친구는 참으로 똑똑하고 어리다. 게다가 이미 작년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부인은 광저우에서 공무원으로 일해서, 주말에만 만나는 주말부부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을 먹고 돌아온 직후, 삼성에서 전화가 왔다. 현재 나온 이슈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펌웨어 레벨로 설명해달라는 것이다.
당초 열흘 일정으로 온 상해출장은 일주일이 연장되어 가까스로 17일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상해에서의 밤을 지내고 있는 현재, 뭔가 끄적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몇 자 적는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출장이었지만, 보름이 넘는 기간동안 많이 배우고 깨달은 시간이었다. 쓸 말은 많지만,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실 중국은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중국에 대한 선입견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하고 우리보다 못사는 것 등이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하이에 와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상하이의 고층건물과 번화가를 가봤다면 편견은 어느정도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양적인 면(고층건물, 자기부상열차등)에서의 얘기다. 도로나 거리에서의 공중도덕은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내가 많이 놀랐던 것은 중국 IT 회사들의 환경과 분위기 였는데, 마치 우리나라보다도 미국과 흡사한 근무조건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Marvell 상하이 연구소의 인력들은 보통 오후 8시전, 아무리 늦어도 9시 반 전에는 모두 퇴근한다. 얼핏 듣기로는 공산주의라서 야근을 국가에서 제한시킨다고, 그래서 이를 어길시 무거운 벌금과 법적인 조치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와 같이 갔던 삼성 책임 연구원은 출장 초반에 불만을 많이 재기했었다. 그는 갑을 관계 말하면서, Marvell 상위 매니져들을 압박했다. 이 지점에서 더 놀랐던 것은 삼성에서 아무리 압박을 해도 Marvell 매니저들이 아래의 엔지니어들을 똑같이 압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삼성 스타일의 업무방식이 한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최소한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중국 엔지니어들이 부러웠다. 현재 Marvell 상하이 연구소에만 2000 명이 근무하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연구소가 4 군데나 더 있단다. 앞으로 R&D 인력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Marvell 전체로 볼때도 중국 R&D 연구소의 비중이 점차 커질 것이다.
이것은 비단 Marvell 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특히 모바일의 경우 해마다 나오는 신제품의 H/W 스펙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체기에 다다랐다. 지금까지는 기술력을 기반으로한 애플과 삼성이 시장을 양분했다면, 중국의 업체들이 따라오는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머지않아 따라 잡힐 것이다.
Marvell 상하이 연구소가 입주한 연구 단지에는 레노버, IBM, NVIDIA 같은 외국 유수의 기업들이 상주해 있다.
입사 시에 간략하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Marvell 의 조직에 대해 간략히 설명은 들었지만, 그야말로 듣고 넘어가는 형식적인 수준이었다.
사실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조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전체 70명 남짓한 인원의 서울 사무실이 많지는 않아도 적지 않은 규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하이 연구소에 와서 보니 서울 사무실은 그야말로 Sub(지원)조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략 일의 프로세스를 보자면, 드라이버 및 펌웨어의 개발은 미국 본사(MSI)에서 한다. 상하이에서도 이에 대한 개발은 하지만, 새로운 코드를 추가하기보다는 문제가 발생하면 디버깅을 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드라이버가 개발되면, 삼성같은 제조회사에 릴리즈를 하기전에 검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QA 와 AE 조직이며 담당자는 Abuzar 이다.
QA 와 AE 좀더 구분하자면, AE 는 문제가 발생하면 동일하게 재현하여 디버깅 정보나 로그를 개발부서인 MSI 나 상하이 쪽에 전달하고, 나름의 분석결과를 피드백해준다.
이를 토대로 디버깅이 완료되면, 릴리즈하기 전의 프로그램을 공유하여 다시 테스트를 하고 검증이 되면 비로소 릴리즈를 하게 된다.
미국과 상하이는 시간대가 정반대이기 때문에, 다시말해 24시간 일을 할 수 있는 체계다. 상하이에서 퇴근시, 하루 동안의 검토결과를 MSI 쪽에 공유하면 이를 받아 디버깅하고, 다음날 아침 상하이 팀에게 다시 전달된다.
그 조직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에 나와서 보니 전체적인 조직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다보니, 문제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Marvell 이라는 회사가 Broadcom 같은 회사에 비해 인력 리소스 측면에서 부족하다. 게다가 조직간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
그리고 이번 출장 건을 통해 사람들의 기질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사람이 가진 성향이 100 가지라면, 100 가지가 모두 나쁜사람은 없다는 걸 알았다. 물론 책으로는 지겹도록 읽어서 이미 알고있긴 하지만.
이번 출장을 통해 몸소 체험했다.
상대방의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이번 출장이 소히 '몸빵' 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나의 role 이 애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