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일차 - 아르메니아의 첫인상

이틀 동안 묵었던 졸파를 떠나 국경을 넘어 아르메니아로 들어가는 날.
거리는 대략 60여 킬로미터지만, 입출국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서 최대한 일찍 출발했다.
어젯밤 날씨를 확인했을 당시에 눈소식은 없었는데, 졸파를 빠져나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닿아 있는 곳에 다다르자, 날씨가 흐려지고, 진눈개비가 날렸다. 이곳부터는 강을 따라 왼쪽에 아제르바이잔 또는 아르메니아를 보며 달리게 된다. 국경이라 그런지 일정한 거리마다 초소가 있었다. 멀리 아제르바이잔의 마을이 보였다. 카메라 망원렌즈를 망원경 삼아 살펴봤다. 확실히 집의 구조나 오가는 차량의 종류가 이란과는 차이가 있었다. 모스크가 없다는 점은 당연한 것이지만.

강을 따라 가는 길이라 평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급경사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길들이 이어졌다. 갈수록 진눈개비는 비로 바뀌었다. 아제르바이잔 국경초소도 보였다. 마치 왓칸 밸리1)를 다시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국경을 10여 킬로미터 앞두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그리고 이란의 국경이 있는 곳을 지났다. 뭔가 특별한 곳이지 않을까 했는데, GPS로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떠한 표식도 없었다.

아르메니아 국경과 맞닿은 Norduz 는 이란에서 만든 경제 특구 같은 산업도시다. 이런 도시들은 지금껏 육로 국경을 여행하면서 많이 보아왔다. 다행이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자 비가 잦아들었고, 이내 그쳤다.
국경에 오면, 익숙한 장면이 통관기다리는 거대한 트레일러 트럭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인데 이상하게도 이 국경은 트럭을 보기 어렵다. 또한 국경을 넘으려는 관광객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산할 수가'

'이란과 아르메니아는 교역이 활발하지 않은가보군'

이때가 오후 3시를 넘은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밀고 이란 국경 출입국으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패니어를 분리하고 X-ray 기기에 통과시켰다. 자전거는 그냥 패쓰.
평소 (지금껏 여느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라면) 검사원이 직접 패니어를 열어보고 뒤적뒤적했을 텐데, 아무 말이 없다. 무사 통과.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어주고서는 끝.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났다. 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여권을 받아들고, 다시 자전거에 패니어를 실은 후, 다리를 건너 아르메니아 국경 검문소로 향했다. 불과 수백미터 거리지만, 사람들의 생김새(서구적 외모를 가지고 있는)와 분위기가 다르다. 마치 카자흐스탄에 다시 온 것 같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동유럽(?)의 향기가 났다.
보초 병에게 자연스럽게 '살람말레이쿰'으로 인사를 하려다가 여긴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 뒀다. 그렇다. 여기는 기독교 국가다. 모스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가 있는.

이란과의 경제력 탓일까. 이란의 국경 검문소에 비해 아르메니아는 허름한 건물에 단촐해보였다.
비자가 없어도 국경에서 바로 비자를 발급해주고 있었다. 물론 수수료를 내고. 준비해 간, e-visa 를 출력한 a4 종이를 직원에게 보여줬다. 여권 심사를 하고 있는데, 다른 직원이 묻는다.

'이 자전거 얼마에요?'

얼마만에 들어보는 익숙한 질문인가? 돌이켜보면, 미얀마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역시 패니어를 분리한 후, x-ray 에 넣었다. 원래 출국보다 입국 시에 더 까다롭게 하기때문에 패니어를 일일이 열어 보여줘야 할 듯 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 말이 없다. 무사 통과. e-visa 받을 때도 이틀 만에 받았는데, 아르메니아, 너무 쿨한거 아닌가.

국경 검문소 건물 안에 있던 은행에 가서 남은 이란 돈을 보여주며 환전이 가능한지 물었다. 대답은 '노우'
달러 환율을 보니, 어제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좋지 않다. '마을에 가서 환전하자'

국경 검문소를 나오니 약하게 진눈개비가 내리고, 왕복 1차선 도로가 이어졌다. 으례 있어왔던 환전상들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지. 숙소가 있는 마을에 가서 다시 시도해보자.'

앞서 아르메니아가 이란과 다른 점을 말했다면, 같은 점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운전 문화.

이란에서 보던 차량들보다 더 노후해 보이는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며 다녔다.
아까와는 반대로 이제 강을 오른쪽에 끼고 반대편 이란을 보며 달렸다. 이란쪽 국경과는 달리 아르메니아 쪽은 무시무시한 전기 철선이 길을 따라 쳐져 있었다. 이따금 CCTV 도 있었다.

이란을 옆에 마주보며 달리는 길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업힐이 시작되는 구간에 들어섰다.
고도 500m 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2500m 까지 올라가야 한다. 숙소가 있는 Meghri 는 600m 무렵에 있다. 끌바를 시작해서 가장 먼저 hotel 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환전하지 못했기에 달러로 지불해야 했다. 1박에 10달러. 이란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주인은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짓으로 은행의 위치를 물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휴대폰의 지도앱을 따라 마을 중심부로 향했다. 나름 규모있는 마을인 Meghri 는 산 중턱에 있었다. 능선을 따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은행에 갈때까지 오르막 길을 걸어야 했다. 은행 영업시간이 다 되었는지 문이 반쯤 닫혀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에게 환전하겠다는 표시를 하니, 문을 열어주었다.
환전율을 보니, 국경에서 봤던 것과 동일하다. 일단 50달러만 환전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에 먹을 부식을 샀다. 역시 러시아의 영향 때문인지 낮익은 식료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자주 먹었던 러시아산 라면. 전체적으로 가격대를 보니 이란보다 물가가 조금 더 비싸다.

저녁은 오랜만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계란을 넣어 끊인 라면을 먹었다. 추울 때는 뜨거운 국물이 딱이다.

PS. 졸파에서 묵었던 숙소는 방 안에 가스 히터가 있었다. 24시간. 그래서 추운 줄 모르고 지냈는데, 이 숙소는 방 안에 히터나 라디에이터 자체가 없다. 주인 아저씨가 미니 전기 선풍기(열선이 있는)를 가져다 주셨다. 5분 정도 틀면 과열로 인해 자체적으로 전원이 꺼지고 얼마 있다가 다시 켜지는. 이것으로 방 안을 커버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두 나라의 자원의 유무 차이가 아닐까.






<얼음이 얼 정도의 기온이다>


<이란에서 자주보게되는 휴게장소>

<멀리 아제르바이잔 쪽 마을이 보인다>


<아르메니아에 들어오고나서 보는 표지판. 글자가 흥미롭다>

<국경선을 따라 이어진 철조망>




<Meghri. 산의 능선에 위치해있다>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80.133 km
누적 거리 : 22266.267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

1)
중앙아시아의 파미르하이웨이가 지나가는 지역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