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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출근 그리고 D-2(2005/12/28)

오늘 내 인생 첫 회사의 마지막 출근을 했다.

개인적인 물건들은 근래 며칠동안 정리를 해왔기 때문에, 오늘은 자리 청소만 하면 됐다.

그 동안 함께 일했던 회사 동료들 그리고 이사님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근처에 볼일 있으면 들리라는 말에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글쎄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학교라면 몰라도, 여기는 엄연한 회사이니 말이다.
퇴근하는 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도보여행을 위한 지도를 샀다. 지도가 너무 커서 분책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내일은 여행에 필요한 나머지 물품을 사야 겠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12/29)

마트에 가서 그동안 준비하지 못한 용품들을 구입했다.

최대한 짐을 줄이려고 했음에도, 몇 개만 집어넣자 가방이 빵빵해졌다.

결국 지도책은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대충 짐을 싸고 나니 자정이 넘어 있었다. 처음 떠나는 도보여행이라 설램이나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도보여행 첫째 날(12/30)

아침부터 대장정의 시작을 축하라도 하듯 눈이 내렸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정확히 오전 9시 45분에 집을 나섰다.

너무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한 두시간 정도 후에 눈은 그쳤다.

지난번보다 성산대교를 넘는 데 힘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깨에 짊어진 짐 때문이겠지.
서울을 벗어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안양천을 따라 안양에 들어왔고 저녁 6시에 군포에 도착했다.

여름에 비해 겨울은 비교적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저녁 6시 정도만 되도 주위가 어두워졌다. 밤에 걷는 것은 아무래도 낮에 걷는 것보다 위험하기 때문에, 하루에 평균 8 시간정도 걷는 것이 딱 적당하다.

첫날 부터 너무 무리 할까 싶어 근처의 찜질방에 짐을 풀었다. 벌써 왼쪽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목표로 했던 수원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군포까지 온 것만으로도 첫날 치고는 나쁘지 않다.

떠나기전 인터넷으로 알아본 거리와 소요시간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단순히 직선 거리로 소요시간을 측정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 걸어왔을 때와는 오차가 있었다.
군포역에 도착했을 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 '도에 대해 관심이 있냐'고 말했다.

“바빠요, 걸어서 해남까지 가야하거든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내일은 평택까지 가야 한다. 지도를 보니 오늘보다 더 힘들 것 같다.

도보여행 둘째 날(12/31)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8시부터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하철 선로를 따라가야 겠다는 생각으로 의왕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중간에 길이 없어져 할 수 없이 철로 위를 걸었다.

철로 주변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위반으로 걸리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걸음이 빨라졌다.
조금 더 걷자, 출구가 나왔고 이를 통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오늘은 전반적으로 어제보다 더 힘들었다. 어깨와 다리에 알이 배겨 중간에도 몇번씩 쉬어야 했다. 또 중간에 길을 헤메서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했다.

오후 6시쯤, 송탄역 근처에 방을 잡았다. 2005년의 마지막 날을 송탄에서 보낼 줄이야.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나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천안까지 가는 것이 목표다. 천안은 약간의 지리를 알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새롭게 시작되는 2006 년은 나에게 어떤 한 해가 될지…

도보여행 셋째 날(2006/1/1)

새해의 첫날, 오늘이 가장 힘들 었던 날이었다.

평택을 빠져나오자마자, 날리기 시작한 눈발은 하루종일 내렸다. 우산을 써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바로 옆에서 차가 달리는 데 위험할 것 같아서 그냥 걸었다.

녹은 눈 때문에 도로는 진흙으로 변해 질퍽 거렸고, 신발과 바지는 진흙투성이 되었다.

저녁 6시에 직산 근처의 여관에 짐을 풀었다. 만 오천원이라 그런지 시설이 열악했다. 담에는 좀 비싸더라도 좀 괜찮은 데서 자야지.

도보여행 넷째 날(1/2)

오늘은 천안을 거처 아산의 도고에 도착했다.

학교를 지나 서부휴게소를 지날 때는 난감이 교차했다. 시간이 맞으면 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서부휴게소에서 들어가는 버스가 없던 관계로 가지는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점심은 예전에 자주 먹던 모산에서 수제비를 먹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순천향대에서 숙소를 잡으려고 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숙박할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 주민에게 물어보니 도고온천까지는 가야 있을 거라고.

오후 5시가 넘자, 해가 지고 주위는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도고에 도착했다.

도보여행 4일째, 어느 정도 적응은 되었다.

장시간 걸으면서 느끼는 점은 길을 만들 때 당연히 있어야할 인도가 없다는 것. 어쩔 수 없이 논뚝길로 가긴 하는 데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도보여행 다섯째 날(1/3)

원래 목표 였던 홍성에 예상보다 이른 오후 4시 쯤 도착한 덕에 다른 날보다 일찍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걷는 내내 날씨는 좋았다. 오후에는 더울 정도 였다.

종일 국도를 따라 걸었기에 길이 어렵진 않았다.

도보여행 여섯째 날(1/4)

오늘은 무려 45 킬로미터를 걸었다. 어떻게 걸었는지 스스로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원래 계획은 아니었다. 예상보다 이른 오후 2시, 목적지인 보령에 도착했을 때 내일 도착할 서천에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잡으려고 했었다. 그러다보니, 보령을 벗어나게 되었고 여관이나 모텔같은 숙박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포를 지나 웅천까지 오게된 것이다. 특히 웅천으로 오는 길은 산을 넘어 와야 하는 길이기에 더욱 힘들었다.

웅천에 도착하니 다행스럽게도 여관이 있었다.

시간은 6시를 넘어 어느 덧 밤이 되어 있었다. 웅천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나머지 한면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 다른 지역보다 더 추웠다. 대신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한다.

내일부터는 무리하지 말아야 겠다.

도보여행 일곱째 날(1/5)

오늘로 여행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오늘은 서천을 거쳐 금강하구둑 까지 걸었다.

전국지도를 보니 반 정도 온 것 같다.

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하루하루 차와의 전쟁이다. 하루에도 백여대가 넘는 차들이 내 옆을 지나가는 것 같다.

부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별탈 없이 무사히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보여행 여덟째 날(1/6)

가장 늦게까지 걸은 날. 언제나 숙소를 구하는 게 가장 힘들다.

오후 5시 죽산에 도착해서 물어보니 여관이 없단다. 아마도 있을만한 곳은 김제나 부안이라고 했다. 김제는 여행일정상 맞지 않아서 패쓰. 결국 10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부안으로 향했다.

거의 1시간 30분동안을 어두 컴컴한 상태에서 걸었다. 무거운 발을 이끌고 8시가 되어서야 부안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았다.

내일은 정말로 쉬엄쉬엄 가야지!!

도보여행 아홉째 날(1/7)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아무래도 어제의 영향 때문이리라.

늦은 점심을 여관 근처의 식당에서 먹었다. 식당 아저씨가 내가 걸어서 해남까지 가는 걸 아시고는 돈을 내지 말고 그냥 가라고 하셨다.

말씀은 고맙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밥값을 드렸다. 가다가 먹으라며 귤을 싸주셨다. 참으로 고마운 아저씨다.

요며칠 전라도에 정말 엄청난 양의 눈이 온 것 같다. 뉴스에서 보는 것과 직접 와서 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부안의 경우에는 시내라서 도로에 눈이 거의 없었지만 부안을 빠져 나오자 도로의 눈이 녹지 않은 채로 있었다. 대개 차도만 눈을 치워놔서 인도로 걸어아 하는 나로서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다.

때때로 어쩔 수 없이 차도를 침범해 오른쪽 끝으로 걸어갈 때, 차가 내 옆을 지나가면 조마조마 했다.

어제처럼 무리하지 않고, 흥덕이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도보여행 열번째 날(1/8)

오늘로서 여행한지 10일째.

고창을 지나 영광까지 왔다. 드디어 최종목적지인 전라남도에 들어온 것이다.

아침을 우유와 빵 하나로 때우고 3시간이 넘도록 밥을 먹지 못했다.

중간에 음식점이나 슈퍼 하나가 없었다. 더구나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주말이라 차가 많을 줄 알았는 데 의외로 적어 놀랐다.

숙소에 짐을 풀고 최종 목적지인 해남까지 지도를 펴놓고 경로를 따라가 봤다. 앞으로 5일 정도면 도착할 것 같다.

벌써 3분의 2정도 온 것 같다.

도보여행 열한번째 날(1/9)

오후 6시정도에 무안 시내의 여관에 짐을 풀었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저녁으로 시켜 먹은 치킨이 문제 였다.

몇번이고 자다 깨다를 반복할 정도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마도 체한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사이다를 사서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가져갔던 바늘로 주인 아주머니께 손을 따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화장실을 서너번 들락날락 하고나니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도저히 일정을 소화할 수 없겠다고 판단해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어서 몸이 회복돼야 할텐데…

도보여행 열두번째 날(1/10)

거의 하루 종일 여관 방에서 뒹굴뒹굴 했다.

'음~ 이런게 백수 생활이군…'

백수가 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비록 하루였지만 정말 길게 느껴졌다.

내일은 막바지 행군 시작이닷!!

도보여행 열세번째 날(1/11)

목포를 지나 가지도에 도착했다.

원래대로라면 산이면까지 가야 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쪽에는 숙박할 곳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다른 날보다 일찍 짐을 풀었다.

목포에서 해남을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강진을 거처 비교적 큰 도로를 따라가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가지도에서 하구둑을 건너 산이면을 지나 해남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큰 도로를 따라가는 방법은 국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돌아가기 때문에 길게는 2~3 일 정도 더 걸릴 것 같았다.

결국 두번째 경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내일이면 해남군에 도착할 것 같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 건가…

도보여행 열네번째 날(1/12)

고지가 가까울 수록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오늘은 송지까지를 목표로 아침일찍 출발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기에 초반부터 속도를 내야 했다.

오전 10시에 해남군에 들어왔다. 땅끝까지 가려면 아직도 60Km 정도가 남아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 시골이다. 지도를 봐도 도중에 특별한 표시가 없다.

아침을 먹은 이후로 중간에 식당을 찾지 못해 점심을 먹지 못했다. 다행히 중간중간에 슈퍼가 있어 음료수로 목을 축일 수 있었다.
그래도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타격이 크다.

오후로 넘어 가면서, 바람이 거세졌고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오후 4 시무렵 숙소를 잡기위해 지도를 펼쳤다.

오늘은 아무래도 화산에서 자야할 것 같다. 가는 도중, 사람들에게 화산에 여관이 있냐고 물어봤다.
내가 물어본 사람들의 대답은 제각각 이었다.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없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결국 가보는 수밖에.
해가 지고 6 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여관은 없었다. 낭패였다.

결국 해남 시내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잔 뒤 내일 아침 화산에 다시와서 걸어가기로 했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도보여행 마지막 날(1/13)

어제는 해남 시내의 찜질방에서 잤다.

찜질방은 여관보다는 저렴하지만 잠을 자기에는 안좋다. 특히 코고는 아저씨들 때문에 잠을 몇번이나 설쳤는지… -_-
아침부터 비가 왔다. 지금껏 비가 온 날은 이틀이다. 우산을 별도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우산을 쓰고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차라리 우비가 낫다.

해남 시내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화산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화산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오늘은 땅끝까지가 목표다.

화산에서 국도를 걸을 경우, 돌아가는 반면에 지방도로를 걸으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기에 땅끝까지는 주로 지방도로를 따라 갈 생각이다.
국도의 경우에는 중간중간에 표지판도 많고, 목적지까지의 거리도 나와 있는 데 반해 지방도로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중간중간 가계같은 데에 들러 물어봐야 한다.

오후 3 시 정도에 최종 목적지인 땅끝에 도착했다.

땅끝에는 땅끝을 기념하는 땅끝탑과 주위경관을 볼 수 있는 땅끝 전망대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바람에 전망대에서 경관을 볼 수는 없었다.

도착한 기념으로 사진을 몇장 찍었다.

땅끝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워낙 혼자 고생하면서 다닌 여행이라 한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옮겨 적으며(2021/8/21)

사진을 더 자주 찍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마지막 날에야 찍었을 정도로 그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