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 다. 무척이나 배꼽을 잡을 거라고 기대(?)하기 쉽지만, 박장대소 보다는 피식 웃는 정도다. 저자가 아무리 위트있는 유머를 곁들여 원문을 적었더라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 전혀 다른 문화를 살아온 타국의 독자가 읽기에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웃을 수 있다.
어찌보면, 소설 같은 문학작품보다 이런 류의 책들이 더 번역하기 까다롭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나라 중에 손 꼽는 노르웨이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어느날 20년 넘게 등산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렸을 적만 하더라고 시골에서 나름 자연과 가까이 살았었다. 그의 주변에는 등산을 즐기는 자연친화적인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들이 옳은 것일까?
그의 아내와 함께 직접 느껴보기로 하고 장비도 사고 등반에 나선다. 먼저 간 곳은 주변의 등산전문가들이 추천한 성수기때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산. 그들 말대로 앞사람의 배낭만 보고가지않고 오롯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등산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산안개 때문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치에 절망한다.
산에서 돌아온 그는 전혀 다른 산행을 결정한다. 성수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을 가기로 한 것. 주변의 전문가들은 숙소구하기도 어려울 거라며 급구 말렸음에도.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전혀 어려움 없이 숙소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등산객들이 붐볐음에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후 저자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험담을 가장한 허풍에 대해 경계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부분이 흥미로웠는데, 국적을 막론하고 왜 전문가(정상을 찍고 돌아온 사람들)들은 왜 그렇게 말할까?
나 자신에게 비춰보니,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음을 고백해야 겠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자연을 즐기는데, 한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숲에 들어가 텐트도 없이 야영을 하는 사람도 있고, 도시의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똑같이 자연을 즐기고 있다. 에베레스트를 가든, 동네 뒷산을 가든 동일하다. 어떤 것이 대단하고, 보잘 것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많은 철학자들은 자연속에서는 삶과 존재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니체는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삶을 갈구하는 이유는 자연이 우리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정치적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기면 그로부터 도피할 자연이 곳곳에 있으니 말이다.
근본적인 것을 동경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농부로 살지 않아도 될 때 농사일을 더 쉽게 동경할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 살지 않아도 될때, 스칸디나비아의 추운 날씨, 사회민주주의적 사회, 그리고 느긋한 삶을 더 동경할 수 있다. 자연 속에서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될 때, 전원생활을 더 쉽게 동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산을 오르는 일이 시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숙달하거나 정복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고, 더는 일상에 필요없는 일들을 할 때는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등산 무경험자의 조언을 들어라2
안개가 자욱해 앞을 볼 수 없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산 정상에 오르지 말라. 그 이유는 스스로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신 무언가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만약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내키지 않는 불쾌한 등산을 할 필요는 없다. 운동은 공원이나 거리, 실내 등 산 아래의 장소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절대 나쁜 날씨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만약 갑자기 나쁜 날씨와 마추쳤다면, 이를 피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빙하를 건너거나 높은 산에 오를 예정이라면, 산장 앞 3미터 지점에서부터 길을 잃도록 방관하는 가이드를 피하는 것이 좋다.
침대와 이불은 과소평가된 물건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나는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네 개의 목표 중 적어도 세 개는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기
농담도 하고 재미있는 경험하기
산 위에서 송년파티와 비슷한 분위기로 즐기기
이상한 이름의 산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이해하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호감을 느껴보기
한 케이블카 준공식에서 여왕은 신체 장애인들도 산에 올라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도록 나라 안에 이와 같은 케이블카가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연보호협회의 대변인은 여왕의 발언이 매우 부적절하다면 반발했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두 발로 직접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협회 또한 이에 동의했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국민들의 자부심이다. 이 자연은 개개인이 직접 스스로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알았다. 만약 산에 직접 오르지 못한다면, 아예 산을 찾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팔이 없으면 케이크도 먹지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만약 노르웨이의 자연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절벽 끝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면, 거기서 떨어져도 그 책음은 스스로 져야 한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국가와 사회는 자연에까지 손을 미쳐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영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항상 근처에 있기를 원한다. 혹여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 있을 때는 국가와 사회가 우리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란다.
자연 속에 있을 때만 우리는 본연의 독립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산다는 것은 어쨌든 간에 나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