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내가 모르는 지식을 얻기위해서이고, 두번째는 내 생각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다.
이 책은 두번째에 해당한다. 부제가 '아흔 살 캠퍼의 장쾌한 인생 탐험'이다. 지금이야 캠핑이 누구나 즐기는 대표적인 레저활동이 되었지만, 지금으로부터 무려 50여년 전에 캠핑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60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저자다. 명확한 병명도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때,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주말농장을 시작하고 세계곳곳을 여행했다.
90세라는 나이의 편견을 깨고 텐트와 야생에서 생활하며, 낮에는 자연 속에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93세로 운명하는 그날까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주말레저농원 '캠프나비'를 열고 '열린인성캠프'를 운영하면서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강조했다. 이런 책을 접할 때마다 용기를 얻는다. '그래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기억에 남는 구절

저자의 지인에 대한 내용을 담은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발췌한다.

그는 정선 오지 산골 농막에서 홀로 산다.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농사일하다 돈 떨어지면 노동 품팔이로 연명하는 그의 삶이 나를 움직인다. 돈 모으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무심한 자연에 들어 자유롭고 마음 편하게 사는 데 뜻을 둔 청년. 그리하여 최소한의 생활을 견뎌내며 가능한 한 자기를 위한 일에 시간을 쓴다. 일신의 쾌락이나 들뜬 상업주의 거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연 중심의 절제된 생활과 내면세계의 자유확보를 위한 소박한 삶에 가치를 두고, 떼때로 좋아하는 음악과 독서를 즐긴다. 라디오로 뉴스만 듣고 텔레비전은 없다. 
이런 비움의 단순한 삶, 자연을 사색하는 조용한 생활을 으뜸으로 한다. 틈나면 가끔 정선읍에 나가 도서실이나 문화 공간에서 정보를 얻고 번잡한 고뇌의 근원을 멀리하며 여백을 즐긴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있으면 됐지 그 이상의 돈벌이에 열중하면 진짜 원하는 삶은 없어지고 모든 것을 망친다는 믿음을 그대로 지켜나간다. 
 
약간의 돈이 생기면 여행하다 돌아오고 의미를 잃으면 또 떠날 채비를 한다. 사람보다 자연을 찾아서 외국의 높은 산도 등반하고 아프리카 오지를 찾는 빈한한 탐험 대열에 끼기도 한다. 이런 해외 원정은 경비가 만만치 않아 몇 년을 절약해 모은 돈으로 초라한 거지가 되어 근근이 다녀온다. 
일상의 생활도 영세한 농사로 자급자족하며, 돈이 필요한 생활을 최대한 절약하여 한 달에 십만 원 안팎으로 견뎌낸다. 적은 돈으로도 어떤 고액 연봉자보다 마음만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에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산다. 
 
정선 시내에서 그의 농막까지는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산골길인데 그는 돈도 없거니와 자동차 갖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편도 2시간 반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다닌다. 이 길은 사색의 길이며 그를 지탱하는 사유의 근원이다.  
청년은 한눈팔지 않고 노동에 몰입하는 순진무구한 참된 사람이다. '노동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노동은 굳이 농사나 공사판의 힘든 일로만 여길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하는 일이 모두 노동이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유언장이 기억에 남는다.

유언장
 
1. 사망 즉시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의학 연구용으로 시체를 기증한다.
2. 장례 의식은 일체 하지 않는다. 
3. 모든 사람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4. 조의, 금품 등 일체를 받지 않는다. 
5. 의과대학에서 해부 실습 후 의대의 관례에 따라 1년 후 유골을 화장 처리하여 분말로 산포한다. 이때 가족이나 지인이 참석하지 않는다.
6. 무덤, 유골함, 수목장 등의 흔적을 일체 남기지 않는다. 
7. 제사와 위령제 등을 하지 않는다. 
8. '죽은 자 박상설'을 기리려면 가을, 들국화 언저리에 억새풀 나부끼는 산길을 걸으며 '그렇게도 산을 좋아했던 산사람 깐돌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9. '망자 - 박상설'이 생전에 치열하게 몸을 굴려 쓴 글 모음과 행적을 대표할 등산화, 배낭, 텐트, 호미, 영정 사진(아래 사진) 각 1점만을 그가 흙과 뒹굴던 샘골 농원에 보존한다. 
10. 시신 기증 등록증(등록번호:10-344/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과/전화 02-2228-1663)

나는 산길을 걸었습니다. 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습니다. 사람 발길의 흔적이 적은 길을 택했습니다. 얼마 안 가 길의 흔적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길 없는 숲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길 없는 곳은 길을 만드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모든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니 심오한 자연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길 없는 길을 갈 것입니다. 남들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험난한 숲을 헤쳐나가는 고생이 없다면, 도착한 후의 보람은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얻기위해 내가 원하는 길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면 직접 해봐야 압니다.
내식으로 살다, 떠날 때도 내 식대로 떠납니다. 내 가족을 위시해 모든 사람에게 번거로움 끼치지 않고 원래의 자리인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미래의 노인과 죽임이 같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늙음이나 죽음을 피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중 '늙음'에 대하여 유난히도 꺼려하고 '죽음'은 아예 남의 일처럼 금단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금기를 깨뜨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묵시적으로 숨겨놓은 '늙음과 죽음'의 정체를 나는 나와 공유합니다. 우리는 '늙음'을 마치 수치스러운 죄인쯤으로 여깁니다. 다른 사람의 늙음은 보이지만 자신의 늙음은 보이지 않는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늙음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다이어트, 에어로빅, 건강식, 찜질방을 전전하며 위로 받으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그래봐야 모두 소용없는 일입니다. 인간은 자연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흰 머리카락 하나, 주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을 고생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리는, 저무는 기호입니다.

자연은 만물을 초원하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거역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의연하고 슬기롭게 지내야 하고 '죽음'을 묵묵히 맞아들여야 합니다. 공부 중의 공부는 바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연이 시키는 대로 그 품에 안길 뿐입니다. 인생 순례 너무나 만족하고 즐거웠습니다.

인생 순례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깐돌이 박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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