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해외토픽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들의 운전이 가능해졌다고. 당시에는 왜 저게 뉴스거리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말도 안돼' 라고 화를 냈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봐도 너무하다는, 또는 말도 안되는 현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나 의식적으로도 중동이라 불리는 서아시아는 모든 것이 낯설다. 세계뉴스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거의 이곳 소식은 들을 수가 없다.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전쟁, 난민, 기아 등등.
그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베일에 싸인 국가다. 석유가 많이 나고, 수니파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도 꽤 많이 알고있는 것이다. 또한 수니파 이슬람의 본토가 이곳이기도 하다.

지난 자전거여행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슬람 국가 중 가장 제제가 많았던 국가는 이란이었다. 이곳이 시아파 이슬람의 본토여서 그런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나 터키의 경우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었다.
보통 개방성의 기준을 여성에 대한 지위로 보는데, 거리에서 보는 옷차림만으로도 알 수 있다. 더운 날씨에 검은색의 니캅(눈만 내놓은)을 입고 다니는 여성들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란의 경우 외국인이라도 여성이라면, 히잡을 써야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만난 여성 자전거 여행자는 이러한 이유로 루트를 바꿨다. 여성들이 이래야(?) 하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감춤으로서 유혹하지 않게 한다는 것인데, 이건 말도 안된다. 왜 여성만 가려야 하는가?
여행의 경험으로 체득한 것 중 하나는 성문화가 닫힌 사회일 수록 이로인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을 종교로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혼은 왜 하고 아이는 왜 낳는가?

책은 저자가 '위민 투 드라이브' 라는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고, 직접 시내를 운전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린 후 며칠 뒤 감옥에 수감되기 까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린시절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할례'를 경험한다. 이때의 기억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고 했다. 어릴때는 어머니가 사우디인(무슬림이었음에도)이 아니라는 이유로 친가쪽 친척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자 또래의 남자들과는 거리 두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당시 여성이 학교를 졸업해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의사, 선생님 정도였다. 여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그림, 바느질 같은 가사와 관련한 것들이었다. 체육시간은 없었으며, 뛰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금지되었다. 공공도서관은 남성만 이용할 수 있었고, 종교서적들을 제외한 로맨스 소설들은 금지되었다. 설교시간에는 항상 '여성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입식 교육 탓에 저자는 엄격한 종교율법을 따르게되었다. 동생이 듣던 팝송이나 어머니가 보던 외국잡지를 불태웠고, 외출할 때는 니캅을 쓰고 다녔다.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 덕분에 저자를 비롯한 3남매는 모두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뛰어난 성적 또한 뒷받침되었다.

지금의 활동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대학생활을 하면서부터 다른 나라, 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어울리면서부터다. 자신이 알고있던 것들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졸업 후, 다국적 석유회사 '아람코'에서 일하게 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밖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조성한 사택 부지에서는 여성도 운전이 가능할 정도로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한번의 이혼으로 아이를 키우게 된 저자는 남성 보호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운전역시 마찬가지여서, 여성이 차량을 이용하려면 기사를 고용하거나 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면 남자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왔다.

저자가 시작한 '위민 투 드라이브' 운동은 자국보다 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당시 주변국가에서 '아랍의 봄'이 한창인 때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문구가 교통법에는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소히 관습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여러차례 심문을 받고, 교도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결국 석방이 되지만, 대다수의 친정부 언론들은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악플과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반응들은 그녀와 가족들을 더욱더 힘들게 했다.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는 비밀경찰과 부서 관리자들은 그녀를 감시했다. 그녀의 동생은 쿠웨이트로, 그녀는 재혼하여 두바이로 옮겼다가, 호주로 이주했다.
2018년 드디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법이 발표되었다. 저자는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인권에 관련한 여러 상을 받고 강연과 회의에 참석했다. '아람코' 퇴사 후, 자신의 경력을 살려 많은 회사에 지원했지만, 어떤 곳에서도 오퍼를 받지 못했다. 지금은 컴퓨터 정보보안 업계에서 여성 전문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의 활동가로 살고 있다.

기억에 남는 문장

알 샬랄 테마파크는 일주일에 단 하룻밤을 여성에게만 개방한다. 테마파크에서 가장 인기있는 놀이기구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5분 동안 여성들이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는 범퍼카다. 비록 그 안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해도 말이다. 비는 한 방울의 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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