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이 책을 집어들기까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이 책을 사서에게 내민다면, 그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신성한 책 이름에 섹스라니, 번역서이기에 망정이지, 국내서였다면, 분명 저자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는 성문화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우리말에 섹스라는 영어에 대응하는 적당한 한국어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하는 증거라고 하겠다.
어디서든 누구든 섹스라는 용어를 꺼내는 순간 그사람은 아주아주 몰지각하고, 몰지각한 사람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흔히 말하는 성교육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 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받아야할 성교육을 또래의 친구들로부터 받은 비디오나 만화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부모와 자식 간에 소위 말해 섹스라고 하는 용어 자체도
마음에 드는 구절
그렇다면 결혼 생활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태도는 무엇일까? 서로 정절을 지키려면 어떤 결혼서약을 주고받아야 될까? 확실한 것은, 흔히 쓰는 상투적인 결혼서약보다 훨씬 더 엄중하고, 비관적인 경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당신에게,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로 인한 불만도 당신에게만 털어놓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바람을 피우며 돈후안 같은 호색한으로 살면서 여기저기 그 불만을 퍼뜨리고 다니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가지 불행의 선택을 검토했고 내 일생을 바칠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커플이 결혼식장에서 서로에게 하는 서약 치고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하지만 이런 서약을 한 뒤라면, 외도를 저지르더라도 실망에 대한 서로 서약한 부분만을 배반하는 것이지 비현실적인 희망을 배반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배반당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나와 함께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고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정곡을 찌르는 공정한 지적으로 이렇게 큰소리를 치게 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실망을 느끼더라도 의리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