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된 건 순전히 노마드랜드 덕분이다. 린다가 주인공에게 '어떻게 이런 책을 여태 안 읽을 수가 있죠?' 하면서 열거한 책 제목 중에 이 책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일부 한글로 번역된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출간된지가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20년이 된 책들이다. 절판된 경우가 있어, 오로지 도서관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출간년도는 2003년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20년의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올드(old)하지 않았다.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작가로서 여러가지 직업을 두루 거치며 살았다. 이 중에 1956년과 1957년에 유타주 남동부에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한시적으로 공원관리원으로 일하면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서두에도 나오지만, 저자는 이 일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지만, 국립공원의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되면서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오솔길을 아스팔트도로로 포장하는 일, 시설물을 세우기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 그러면서 상당히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주차장까지만 차량의 접근을 허용하고, 이후로는 도보 또는 자전거등을 통해 국립공원에 입장하는 방식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충분히 유용한 아이디어다. 인근마을로부터 30km 떨어져있는 국립공원내 트레일러에서 지낸 저자는 정말로 행복해보인다. 마치 자신의 정원마냥, 공원 내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특히 저자의 사막(=초원)에 대한 예찬은 대단한다. 보트를 띄워서 강을 따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곳을 다니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지금은 수몰되거나 개발되어 볼 수 없는 독자로 하여금 부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기억에 남는 구절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바퀴달린 연체동물처럼 금속 껍데기 속에 갇힌 그들을 내가 어떻게 그 감옥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까? 공원 레인저가 깡통 같은 그 자동차를 따는 오프너가 될 수 없을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보세요. 제발 그 기계에서 나오라구요. 그 바보같은 선글라스를 벗어버리고 맨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라구요. 그리고 그 빌어먹을 카메라를 내던져버리라구요. 구두를 벗고 뜨거운 모래에 발가락을 묻어 보라구요. 거칠고 생생한 땅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발톱이 한두 개 찢어져서 피가 난다구 죽는 거 아니잖아요? 아주머니, 제발 그 창문 좀 내리라구요. 사막을 제대로보려면 그 냄새를 맡아야 한다구요. 먼지가 많다구요? 물론 먼지가 많지요. 그게 바로 유타라구요. 하지만 이건 좋은 먼지에요. 철분이 풍부한 유타의 붉은 먼지지요. 엔진을 끄고 그 쇠우리에서 나와서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당신의 정맥을 쭉 펴라구요.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늙어서 쭈글쭈글해진 그 젖퉁이에 뜨거운 햇볕을 좀 쬐어주라구요.
라디에이터가 끓어오르고 연료펌프가 증기로 막힌 차 안에서 지도를 곁눈질해 보는 신사양반, 그 번쩍이는 승용차에서 나와서 걸어보라구요. 부인과 아이들을 잠깐 버려둔 채 협곡 안으로 조용한 산책을 해보라구요. 거기거 길을 잃고 헤매다가 기분이 내킬 때 돌아오라구요. 그것이 당신과 당신의 부인, 그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 될 테니까요.
아이들에게도 좀 놀 시간을 주세요. 아이들을 차 밖으로 내보내서 바위를 기어 오르면서 방울뱀과 전갈을 좇아다니고 개미집을 찾아보도록 하란 말입니다. 그래요 아이들을 내보내세요. 그들을 해방시키라구요. 어린애들은 그 답답한 관 속 같은데 가두어두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네 부인. 제발 그 모터 달린 휠체어에서 내리세요. 허리에 댄 그 거품 고무밴드를 벗어던지고 허리르 꼿꼿하게 펴고 서세요. 그리고 걸으세요. 우리의 아름답고 축복받은 땅 위를 걸으시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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