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국가들을 다녀봤지만, 기억에 남는 나라들이 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저자가 태어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나에게 좋은 쪽도 나쁜 쪽도 아닌, 이상한 쪽에 해당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인가 하고 자문했지만, 여행 온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바로 인종 간의 차이가 이렇게 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백인과 흑인이 거주하는 지역이 엄연히 나뉘어져있고, 마을의 중심에는 백인들이 살았다. 외곽에는 슬레이트 지붕의 흑인 거주지가 있었다. 지리적인 위치는 아프리카 대륙이었지만, 마치 영국에 붙어있는 국가라고 할 정도로 그동안 여행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많이 달랐다.
이제 책 얘기를 해보겠다. 저자는 남아공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금은 꽤 유명한 미국 코메디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태어날 당시에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분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백인과 원주민(흑인)이 결혼은 물론이고, 아이를 출산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를 어길 경우, 백인은 벌금만 내면 되지만, 흑인은 감옥에 가야했다. 백인과 흑인은 사는 곳도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백인은 집안일과 청소를 위해 흑인을 필요로 했다. 자유분방했던 어머니와 인종차별에 반대했던 스위스 국적의 아버지 사이에서 저자는 태어났다. 책 제목처럼 그가 태어난 것은 곧 범죄였다. 길을 갈때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고 남들의 시선을 피해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인 이었기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학교 역시 인종별로 반을 구분해놓고 있었다. 입학 당시에는 백인들과 유색인만 구성된 반에 배정이 되었지만, 스스로 흑인 반으로 옮긴다. 학교에서는 문제아였지만, 선(?)은 넘지 않았다.
유색인이면서도 흑인들의 언어와 백인들의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었기에, 이 둘의 문화를 경험했다. 훗날 이것이 저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아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2019년 여행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남아공의 인종갈등의 역사를 굳이 알지 못하더라도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만델라 대통령 이후로 본격적으로 인종차별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법조인들만 아는 법문에 쓰여진 법보다 사람들 사이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법이 더 강해보였다.

기억에 남는 문장

꽤 오랫동안 나는 왜 그토록 많은 흑인들이 자신들의 토착 신앙을 포기하면서 기독교를 믿게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에 나가면 나갈수록, 교회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독교의 작동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늑대에게 기도를 하면, 그건 야만적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이 조상에게 기도를 올리면, 그건 원시적이다. 하지만 백인이 물을 포도주로 바꿨다는 사람에게 기도를 하면 흠, 그건 상식적인 행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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