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1년

평점 ★★★☆
한줄평 한달에 하루만으로도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다 ​

다른 책을 찾으려다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순전히 책제목 때문에 읽게되었는데, 곧 알게된 사실은 저자가 1년간 숲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고, 매달에 1번을 숲에 가서 1박을 한 것이라는 것. 이 지점에서 제목에 낚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계속 읽어 나갔다.

저자는 노르웨이인이고, 프리랜서(회사에 가지 않는)이며, 노르웨이에 산다. 이점을 염두해두고 이해해야 한다. 만일 책을 읽고 '나도 저자처럼 해보고 싶다'는 한국에 사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모로 다른 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9월과 10월 약 46일간 노르웨이를 여행했던 적이 떠올랐다. 비싼 물가때문에 매일 야영을 했기에 어찌보면,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바로 '날씨'다. 실제 글의 상당수 부분이 날씨 얘기다. 물을 사먹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자연과 산과 숲 그리고 낮은 인구밀도. 개인적으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미친 물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날씨. 2주 내내 종일 비가 오는 상황이 되자, 결국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저자처럼 한달에 하루였다면,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저자는 주로 혼자 숲으로 왔지만, 종종 동료나 친구, 아들을 데리고 왔다. 계절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풍경들, 동물들의 모습을 상세히 설명했다.

독자로서, 한달에 하루 뿐이지만 '숲 부자' 인 환경에 사는 저자가 부러웠다.

시간이 나면 제일 먼저 친구에게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기분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글로벌 시대에 잘 적응한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피조물일 테니 말이다. 이 시대는 친구의 숫자로 성공을 가늠한다. 성공이 소비 전기량이나 데이터 양에 달렸다는 듯 네트워크의 크기로 성패를 가늠한다.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 활동이 가장 왕성한 사람들을 모델로 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 어디에나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 토론에도, 행사에도, 인터뷰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람. 소셜미디어로 추적해보면 그런 사람들은 열개, 열다섯 개 토론에 동시 참여하고 초 단위로 어떤 사람을 칭찬했다가 다시 다른 사람을 욕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슨 일이든 의견을 개진해야 하고, 사람들의 여가 활동에까지 참견을 해댄다. 
그럼 그런 사회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무리가 너무커서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면, 온 천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선의의 초대와 과도한 참여에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정말로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생물학 교수 헤센은 향수가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감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반박할 뜻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울한 기분 역시 뭔가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고, 특히 가을이면 그런 기분에 젖을 때가 많다. 우울은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이다. 추억과도 관련이 깊고, 또 내가 지금은 누구이며 과거에는 누구였는지에 대한 상념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아까 그 가상의 고라니는 물론이고 자연의 다른 생명체들과 나의 차이점이다. 자신과 자신이 차지하는 자리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의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이 있다. 고립된 생물학적 존재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은 물론이고 자연까지 포함하여 주변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생각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개념이 '텔로스'이다. 이 말을 이용해 그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는 목적이 있고, 생명은 그 목적을 추구한다는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였다. 이 목적은 사물의 실질적 실현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죽는다. 나도 죽고, 9월에 낚시를 할 때 나를 물었던 모기도 죽을 것이고, 6월에 보았던 비버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자신을 실현하고,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 지상의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노력할 것이다. 모기와 비버와 나, 우리 셋. 큰 맥락에서보면 정말 하찮은 존재이고 각자의 종을 대표하기에도 너무나 변변치 못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각자의 목적에 맞게 행동한다. 모기는 피를 빨고 비버는 나무를 쏠아 댐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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