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일차 - 눈길의 오르막
오늘의 루트는 본격적인 업힐 구간이다. 600m 에서 시작해 2500m 까지 올라야 한다. 인도도 갓길도 없는 왕복 1차선 도로가 오르막 산 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길 양쪽에는 무릎 높이까지 쌓인 눈이 펼쳐저 있다. 해가 비치는 곳은 상태가 그럭저럭 괜찮지만, 그늘이 진 곳은 눈이 녹지 않아 빙판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다행히 오가는 차량들이 별로 없다는 것. 길의 상태를 보면 누구라도 이곳에서 운전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오전 8시 반 무렵 출발하여 저녁 6시 무렵까지 계속된 끌바. 업힐이라, 추운 줄 몰랐다. 약 30 여 킬로미터를 걸은 셈이다. 숙소가 있던 Meghri 을 벗어난 이후로는 상점하나 볼 수 없었다. 이따금 식수용으로, 흘러 내리는 계곡물을 퍼올려 만든 개수대가 있긴 했다. 앉아서 쉴 곳마저 찾기 어려웠다. 도로만 바로 벗어나도 눈 밭인 데다가, 곳곳에 출입을 통제하는 철조망이 쳐저 있었다. 점심으로 어제 샀던 초콜렛을 먹었다.
해가 점차 지평선 너머로 기울자, 날씨가 쌀쌀해지고, 허리와 어깨가 결려왔다. GPS 상 고도는 2100 m.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었다. 텐트 칠 곳을 물색해봤지만, 눈밭이라 지형 구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결국 도로 밖에 텐트를 치는 것은 포기하고, 집이 나오면 부탁해서 근처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오후 5시가 지나고 멀리 산 중턱에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저기에 쳐야 겠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고도는 2300m 까지 올라갔고, 시간은 6시 무렵이 되었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숨이 가빠왔다.
건물 앞에 트럭이나 굴삭기 같은 중장비가 주차되어 있었다. 문을 두드리니, 사람이 나왔다. 당연히 말은 통하지 않아 이곳에 텐트를 쳐도 되는지 몸짓으로 설명했다.
다행히 ok. 하지만 밖은 너무 추우니 안에서 자라고 했다. 안을 둘러보니, 침대 몇 개가 놓여있고, 난로, 부엌 겸 사용하는 공간, 2명의 사람이 있었다.
몇 번 거절하다가, 고맙게도 침대 중 하나를 내주었다.
그들은 도로의 제설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그들의 사무실이자 숙소였다. 그들은 내가 오늘 걸어올라온 마을에 사는 사람들로 겨울철마다 이 일을 한다고 했다.
정전이 되기 전까지 그들과 함께 DVD 뮤직비디오를 봤다. 두 사람 중 한사람은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는데,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알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북쪽 or 남쪽?'
'남쪽에서 왔어. 북쪽으로는 가지도 못하지. (휴대폰 지도를 보여주며) 이곳이 남한이고 저곳이 북한이야. 지금은 정 가운데 철조망이 쳐저 있어. 옛날에 전쟁을 했거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야. 옆나라인 아제르바이잔으로는 절대 갈 수 없어. 예전에 전쟁을 했거든'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니.
화장실을 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그리고 2300 m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설산이 장관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불빛 하나. 아마도 어제 묵은 Meghri 가 아닐까.
PS. 정오를 지난 무렵, 왠일인지 계속 오르막 길이 이어지다가 내리막이 나왔다. 이때다 싶어 자전거에 올랐다. 그때 핸들바 패니어에 올려놨던 휴대폰이 떨어지면서 앞 바퀴사이로 들어갔다.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그사이 휴대폰을 깔고 지나가버린 후였다. 휴대폰 케이스를 끼운 상태라 별 걱정을 안했는데, 보니, 화면 액정이 깨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순간 300 달러가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아 산지 얼마나 되었다고!'
PS2. 오늘 내내 주변 설산과 흘러내리는 계곡을 보며 걸었다. 한편으로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왔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곡물을 보면 정말 맑다. 이란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마치 왓칸에서 봤던 그 정도의 수질이다.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32.652 km
누적 거리 : 22298.919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