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일차 - 떠나는 날,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들

아르메니아를 떠나는 날. 기차 출발시간은 오후 9시 30분.

숙소에서 기차역까지의 거리를 고려한다고 해도. 체크 아웃시간인 정오로부터 한참 남았다. 숙소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해주셨다.
2주 넘게 있었지만, 나로써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나라다. 거의 자전거를 타지 못했고, 숙소에 있는 동안에도 길거리의 눈들 때문에 바깥 출입을 자주하지 못했다. 대부분 시간을 숙소에서 머물렀다.

점심을 엊그제 먹고 남은 것들로 때우고, 예레반에 와서 시작한 중국 여행 포스팅을 마무리했다. 여행 600 일이 넘어가고 있는 현재, 80여일치 분량만 겨우 올렸으니,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슬슬 갈 시간이 다가오고, 남은 음식을 모두 먹고갈 요량으로 이른 저녁을 먹으려는데, 열흘 넘게 같은 방을 쓰던 이란 아저씨가 먹고가라며 스프를 만들어주셨다. 몇 번을 사양한 후에 고맙게 받았다.
오후 7시에 숙소를 나왔다. 크리스마스 휴일이라 도로는 한산하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8시 경 기차역에 도착하니 플랫폼에 기차가 한대 서있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전거를 끌고가 직접보여주며 어디에 실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한 객차의 마지막 출입구를 가리켰다. 패니어를 분리하고 있는데, 그가 자전거를 세로로 세워서 실으라는 몸짓을 했다. 최대한 차지하는 부피를 줄이라는 것 같았다. 출입문에 있는 고리에 자물쇠를 걸어 자전거를 세로로 세웠다. 열차의 진동으로 인해 제대로 서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어쨋든 그렇게 자전거를 세우고, 패니어를 들고선 티켓에 적힌 객차와 좌석번호를 찾아 앉았다. 승객의 대부분은 러시아 사람들 같았다. 열차의 구조는 인도에서 탔던 열차와 거의 흡사했다. 한마디로 시설이 썩 좋지는 않았다. 화장실도 그렇고.
한 벽에 위, 아래로 즉 2명이 누울 수 있는 매트가 있고, 시트와 베개가 있었다.

어느덧 출발시간이 임박하고, 열차가 출발하자, 아까전 자전거 실을 때봤던 직원이 객실을 돌며 티켓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자, 티켓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가리키며, 자전거용 티켓을 달라는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소리. 며칠 전 티켓을 구입할 때도 이런 얘기는 없었다. 웜샤워에서 물어본 아르메니아 호스트로부터도 별도의 요금은 없다고 들었었다. 그에게 이런 내용을 어필했지만, 영어를 모르는 그는 티켓을 달라는 얘기만 반복했다. 기차는 이미 출발했고, 그렇다고 내릴 수도 없는 상황. 가격을 물어보니, 내 티켓을 적힌 가격을 내란다. 이런 말도 안되는. 드람이 없었기에 달러 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외국인이라 씌우는 바가지 요금이 확실했다. 달러를 내고 잔돈을 남은 드람으로 내려고 하니, 잔돈은 됐다며 선심을 쓰는 척했다. 떠나는 순간까지, 정나미가 떨어지려고 한다.

PS.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종교적이나 문화적이나 기후, 환경적으로도 정말 다른 국가다. 있는 동안 느낀 점은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스탄 국가를 다시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도시나 마을들이 이곳에 위치해있다. 평지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근대에 들어와서 대학살과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을 피해 국민들이 산속으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기차표>






<자전거를 세울 수 있는 별도의 장치는 없고, 창문에 붙은 바에 핸들바를 감은 자물쇠를 걸었다>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8.394 km
누적 거리 : 22355.778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

likewind, 2025/10/21 11:35, 2025/10/21 11:38

초반 며칠을 제외하고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던 나라. 전체 체류기간의 절반 이상을 수도인 예레반의 도미토리 숙소에서 지냈다. 보통의 경우라면, 투숙하는 관광객들을 자연스럽게 마주치기 마련일텐데. 거의 볼 수 없었다.
산악지형이라 눈이 많이왔고, 제설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자전거나 도보로 통행이 곤란했다. 대부분 흐린날씨였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두웠던 기억이다. 여행기를 다시금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유달리 바가지를 많이 씌웠던 나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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