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일차 - 어쩔 수 없는 결정
어젯밤 나를 재워준 이 사람들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떠나기 전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출발을 했다. 200 m 만 더 가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오늘의 목적지는 카판 으로 잡았다. 거리가 30 km 정도이고, 또한 내리막이라 아무리 오래 걸려도 서너시간이면 도착할 거라 생각했다.
고도 2500 m 에 다다라서, 인증 사진을 찍고, 내리막 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곧 끌바를 시작해야 했다. 급경사에다가 눈이 그대로 쌓인 구간이 잦았기 때문이다. 8자도로에.
고개 하나를 넘자, 산 아래 건물들이 보였다. 꽤 규모가 있어보이는 Lernadzor 라는 마을이다.
급경사가 끝나고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졌다. 하지만 눈과 얼음으로 덮힌 도로는 계속되었다. 어쩔 수 없이 끌바는 계속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오늘 카판도 힘들 것이다'
'눈만 아니면, 경치를 구경하며 신나게 타고 내려갔어야 하는 길인데…'
아침부터 3시간 가량을 끌바만 했다. 그냥 탈까 하는 마음에 안장에 앉아 페달링을 했다. 얼마못가 빙판이 나왔고, 그대로 미끄러 넘어졌다. 다행히 자전거에 문제는 없었다.
그 이후, 계속해서 끌바를 했고, 어제보다 한시간 이른 오후 5시 무렵 카판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숙소 간판을 보고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그제 묵은 숙소보다도 더 좁고 열악하지만, 더 비싸다 7000 드람.
어제와 오늘 종일 끌바를 하면서 계속한 생각은 '앞으로 이런 길이 계속된다면, 비자기간 인 3주 내에 조지아 국경까지는 가는 건 어렵겠다'는 것이다. 오늘로서 아르메니아에 들어온지 3일째이지만, 페달링보다는 끌바한 시간이 압도적이다. 앞으로의 루트를 볼때도, 카판 이후 다시 2000 m 이상 오르막이 이어진다. 오르막 내리막이 혼재된. 무엇보다, 문제는 재설작업이 제대로 안된 눈 쌓인 길이라는 것.
고심끝에 내린 결론은 버스를 타고 수도인 '예레반' 으로 가는 것이다. 지난 600 일 가까운 기간 동안 비자 문제(파키스탄)로 인해 어쩔 수없이 교통수단을 이용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환경 조건으로 인해 점프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모든 루트를 육로로, 그리고 자전거로 지나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은 지난 인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경로로 인해 깨졌지만, 위도에 상관없이 모든 경도를 자전거로 지나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은 아직 유효하다.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카판에서 예레반까지의 경도에 해당하는 거리를 이후 조지아에서 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론리1)에 따르면, 카판에서 예레반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니,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통화를 시켜줬다. 그에게 버스 출발시간과 타는 위치, 가격을 물어봤다.
좀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카판 중심가로 향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몸짓 만으로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꽤 규모있어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 리셉션의 직원에게 물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버스에 대해 물어보니, 타는 곳과 위치, 가격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매일 아침 9시에 출발하고, 대형 버스는 없고, 미니버스 형태다. 타는 곳은 이 호텔의 바로 앞 주차장이고 티켓 가격은 3000 드람. 자전거 비용은 얼마인지 모르겠음.
아까 전 보다는 마음 좀 놓였다. 부식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PS. 방에 돌아오니 불이 안켜진다. 주인에게 말하니, 옆방을 쓰란다. 그러면서 원래 10000 드람인데 8000 드람에 주겠단다. 처음 체크인 했던 방은 7000 드람인데, 더 비싼 방을 써야 하다니.








<설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카판이다>



<이런 도로 상태에서는 라이딩이 어렵다>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38.465 km
누적 거리 : 22337.384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