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나서 얼마 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문자도 카톡도 아닌 Whatsapp 메시지. 한국에 들어온 후로 거의 쓸 일이 없었던 앱인데.
Hi Kim! How are you!? We hope you are still happy in your country life! We wonder if you’ll go back to traveling mode in the next year.
We are fine, building the dorm for this arriving season. We kinda overwhelmed but happy.
We think about you!
Take good care, write us soon!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귀국 전, 마지막으로 체류했던 아르헨티나의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나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잠시 중단된 것일 뿐.
코로나 바이러스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북미대륙 어딘가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최종 목적지인 알래스카에 닿았을 지도. 계획한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에서 수 차례 경험했지만, 그래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중단해야 한다는 사실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혹여나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비자 만료일이 임박할 때까지 기다려봤지만, 모든 국경을 봉쇄한다는 소식에 결국 도망치듯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계획에 없던 귀국이었기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초반 몇 개월은 아르헨티나 대사관과 외교부 홈페이지를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상황이 나아지길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여행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그동안 마음속에 미뤄놓고, 회피해왔던 질문이 던져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얼마 전까지 여행을 무사히 마치면,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답을 얻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할 모범 답안 말이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에 대한 확신은 점점 의구심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찾을 수 있을 거야'
'여기까지 와서 왜 머리 아프게 고민을 해야 해? 지금 순간을 즐기라고'
'피곤하니, 내일 걱정은 내일모레 하자'
같은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해왔다. 스스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여 행동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해서 답을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결국 지난 길 위에서의 시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온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외장하드를 꺼냈다.
위치: F:\자전거 여행(2015~)
크기: 2.36TB(2,601,164,246,167바이트)
내용: 파일 176,005, 폴더 3,037
답을 찾기 위한 단서들이 이 안에 모두 담겼다. 앞으로 이를 통해 추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시작하려한다.
이것은 비록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떠나는 두 번째 여행이자,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