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기차 출발시간이 밤 10시 30분이기 때문에 정오에 맞춰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나름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백팩에 크로스백 그리고 2리터짜리 물통을 드니, 한 걸음을 내딛기에도 여간 힘든게 아니다.
'앞으로 이렇게 여행을 해야할텐데, 이제 부터 왠만한 거리는 릭샤를 타야 하는 건가'
오전에 천둥이 치고, 비가 오는 듯 하다가, 오후들어 구름이 거치고 여느날처럼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기차시간까지 10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어디서 뭘 해야 하나.
사실 최근까지 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물색했었다. 무려 10시간 동안 식당이나 까페에서 진을 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물며 공원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생각한 것이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아, 출발시간까지 묵는 것이었다.
웹사이트를 통해 파하르간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예약했다. 체크인 시간(오후 2시 이후)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걸어서 숙소에 도착, 리셉션에 앉아있는 여주인에게 예약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booking.com 가격은 tax 가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라, 250루피가 아닌 300루피를 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예약 페이지에는 분명 'Total price 250 루피' 로 적혀있건만.
화면을 가리키며 250 루피는 모든 것이 포함된 금액이라고 말했지만, 주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봤지만, 매번 적응이 쉽지않다.
'50루피 인데. 한번 더 말해보고 안된다고 하면, 그냥 주자'
주인은 아들에게 물어보겠다며, 전화 통화를 하더니, 원래대로 250루피를 받았다.
어렵사리 체크인을 마치고, 침대하나가 꽉 들어찬 좁디좁은 방에 짐을 풀고는 누웠다.
'기차표 취소하고, 비행기표 끊어 바로 카자흐스탄으로 갈까'
기차 출발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전에 설치해 둔 앱으로 기차 상황을 체크했다. 내가 탈 열차는 뉴델리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연착되는 일은 없었다.
출발시간 1시간을 남겨두고, 숙소를 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전광판에서 티켓에 적힌 기차의 번호와 타야할 플랫폼을 확인했다.
기차 타는 동안 먹을 부식(과자, 바나나)을 사고, 3번 플랫폼으로 갔다.
플랫폼에 자리를 깔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 자는 사람들,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마치 피난을 가는 사람들 같다.
출발 시간 20여분을 남기고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칸칸마다 class 가 적혀있었다.
'3 Tier Class'
내가 탈 열차칸이다. 티켓에 적혀있는 좌석번호(25)로 들어가 앉았다. 총 위, 중간, 아래 이렇게 3개의 침대가 있는데, 나는 가장 아래 칸이다.
짐을 풀고 앉아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자기 자리란다. 몇 번이냐고 물어보니 '25'.
내 티켓을 보여줬다.
'뭔가 이상한데'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객차 문 옆에 붙어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저기에 내 이름이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종이에는 열차 탑승객의 이름과 좌석번호가 출력되어 있었다. 맨 아래쪽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내 좌석이 3AC → 2AC 로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내용과 바뀐 좌석번호가 적혀 있었다.
'공짜로 한 등급 위의 좌석을 타다니'
새로운 객차로 이동했다. 2AC 객차는 3AC 보다 쾌적했다. 침대가 위와 아래 이렇게 2개만 있었고, 담요, 시트, 수건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짐을 놓으니, 눕는 자세가 불편할 정도로 침대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출발 시간 10시 반이되자, 열차가 출발했다.
얼마후, 차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돌아다니며, 검표를 했고, 생수, 짜이와 커피, 그리고 식사(비리야니)를 파는 사람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숙소에서 낮잠을 잔 탓에 밤 새 잠이 오지 않을까 했지만, 열차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뉴델리에서 첸나이까지 약 33시간.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PS. 에어컨(AC) 칸이라, 전혀 더위를 모르고 지냈다. 새벽에는 오히려 추울 정도였다.
PS2. 기차가 서행하거나 멈춰섰을 때, 그리고 대도시(기지국이 많은)를 달릴 때를 제외하고는 기차안에서 3g data 사용은 거의 힘들다.
PS3. 파하르간즈에서 가격이 저렴한 숙소들은 인터넷으로 예약을 완료했더라도 직접 가서 체크인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방이 있음에도 방이 없다고 하거나, 추가요금을 요구하거나 등등의 이유로 Plan B, C 를 만들어둬야 한다.
<기차 출발 시간까지 머문 숙소>
<파하르간즈에 있는 일반 식당의 흔한 메뉴판. 가격이 착해서 자주 애용했다>
<뉴델리 기차역의 현황판. 10시 30분에 출발하는 첸나이행 기차는 3번 플랫폼이다>
<AC 3등급 칸>
<기차를 타기 전에 객차 문에 붙어있는 출력된 종이를 살펴봐야 한다. 운좋게 등급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C 2등급 칸의 경우, 침대자리마다 담요, 시트, 수건이 제공된다>
<UB 는 위쪽 침대, LB 는 아래쪽 침대. 티켓 번호를 확인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