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에 적힌 기차 출발시간은 오전 5시 30분. 일어나서 준비하고 미리 역에 나가있으려면, 넉넉히 2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어젯밤 10시. 핸드폰 알람을 새벽 2시 50분으로 맞춰놓고 침대에 누웠다. 배낭여행을 시작하고나서 출발하는 전날에는 거의 잠을 못자고 이동하고 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교통편이 거의 이른 새벽이나 밤 늦게 있다보니, 자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또한 불편한 자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해서 밀린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대개 오후까지 잠을 자는데, 이렇게되면, 그날 밤에는 눈이 말똥말똥해지게 된다.
결국 2시간 정도를 자고 역으로 출발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거리.
거리 곳곳에 누워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마 역까지 가는 동안 100 명 가까운 사람들을 본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인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함께 매년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률(작년 기준 7% 대)을 보이고 있는 국가임에도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자주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치들이 인도의 이런 현재를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출발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좌석번호를 알아보기 위해, 창구(inquery)로 갔다. 직원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깨우기가 미안할 정도다. 그래도 물어보긴 해야 하니.
직원을 깨워 좌석번호를 물어봤다. 그는 티켓에 열차와 좌석 번호를 적어주었다.
'AB1/31'
31번은 알겠는데, AB1 은 뭐지?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을 해봤다. AB1 은 2A 와 3A 가 함께 존재하는 칸이라고 한다. 열차 칸에 'AB1' 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에 찾기 쉽다고.
인도 열차 앱으로 열차가 지연이 되는지, 그리고 현재 어디까지 와있는지 확인해봤다. 열차는 지연없이 정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버스에 비해 기차는 정시에 운행되는 듯 하다.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열차가 한대 들어왔다. 그런데 열차 번호가 티켓에 적힌 번호와 달랐다.
'다른 플랫폼인가? 아니면 이 열차 후에 바로 들어오는 건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기차 뒷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칸 부터 내가 타야할 열차 번호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열차 앞칸과 뒤쪽 칸에 적힌 번호가 달랐다.
그때 기차가 슬슬 움직일 준비를 했다. 얼른 칸에 타서 AB1 칸으로 이동해 앉았다.
3시간을 달려 뱅갈로르에 도착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뱅갈로르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다. 2002년 인도에 왔을 때, 1년 가까이 살았던 곳이라 추억이 많다. 그래서 배낭여행을 계획했을 때도 이곳에 오기위해 가장 먼저 루트에 넣었다.
벌써 14년 전이라 그때 알고지내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추억이 있는 장소에는 다 가볼 생각이다.
1. Cubbon park
뱅갈로르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도심속의 쉼터라고나 할까. 꽤 넓은 규모의 부지로 만들어졌다. 14년 전에도 이곳에 자주는 아니어도, 몇 번 왔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꽤 많이 변했을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나무들과 풀밭, 벤치 그리고 그늘에서 쉬는 사람들의 모습. 그 분위기는 그대로 였다. 그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차량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
공원 안에 가득 주차된 차량, 그리고 공원을 지나다니는 차량이 워낙 많았다.
나무와 숲 말고도, 공원 안에 있는 high court 나 state central library, 근처에 있는 정부 건물(vidhana soudha)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어서 밖에서 보는 걸로 대신했다.
2. MG road
Cubbon park 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뱅갈로르의 main 도로인 MG(Mahatma Gandhi, 마하트마 간디) road 로 이어진다.
인도에는 수많은 MG road 가 존재한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하고 번화가로 연결된 도로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뱅갈로르에 있는 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MG road 표지판이 보이자, 난감이 교차했다. 그때처럼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년'을 들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곳 역시 많이 변했지만, 군데군데 남아있는 건물들이 있었고, 이를 통해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MG road 의 시작 부분에 있던 돌로된 건물들.
슈퍼마켓 'food world' 는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다니던 Aptech 학원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자주 갔었던 추억의 장소들을 찾아나섰다.
- Gangarams book store
MG road 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서점이었다. 당시 인도에서는 미국에서 출간된 원서들을 low price edition 으로 출간했었다. 종이의 질만 다를 뿐 실제 원서와 동일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이라 여기서 여러 권 구입했었다. 구글맵 상에 표시된 곳에 가봤지만, 어찌된 일인지 찾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몇 개월 전에 자리를 옮겼다는 얘기만 들었다.
당시 MG road 에서 가장 번화한 도로변에 있었는데. 인도 역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오프라인 서점들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 Green onion
당시 인도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을 꼽으라면, Masala dosa 와 닭볶음밥(chicken fried rice)이다. Dosa 는 집 근처에서 가장 많이 먹었고, 닭볶음밥은 MG road 에서 가장 많이 먹었다. 그때 단골 식당이 바로 이곳이다.
어젯밤, 구글맵에서 검색했을 때, 놀랍게도 예전 그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점심을 먹을 겸, 이 곳을 찾았다. 당시에도 중국인 사장이 운영을 했는데, 매니저를 보니, 동양계 사람이다. 그리고 서빙을 하는 사람들도 역시 동양계다.
예나 지금이나 유명한 식당이라, 가계 안은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쯤에는 문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때 먹었던 닭 볶음밥과 닭을 재료로한 스프를 주문했다. 가격은 그때의 2.5 배로 올라 있었다(40 루피 → 100 루피).
잠시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밥 한 숫가락을 입에 넣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먹어본 chicken fried rice 와는 다른 맛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이런 맛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누룽지 맛이 난다고나 할까'
먹는 동안, 14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문득 함께 동고동락했던 형들이 생각났다.
'지금 뭘하고 있을까?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나오면서 인도에서 처음으로 팁도 줬다.
- KFC
이곳을 잊을 수 없는 것은 2002년 월드컵 4강 독일과의 경기를 여기서 응원하며 봤기 때문이다. 당시 인도에서는 구입하기 어려운 붉은색 티셔츠를 수소문하여 단체로 맞춰 입었었다. 첫 단체응원을 했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그 이후 단체 관람은 할 수 없었지만, 재밌는 추억이다.
막상 가보니, 공사가 한창이어서, 아쉽게도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3. Ulsoor lake
뱅갈로르 시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울술레이크.
이곳은 평일 오전마다 다녔던 영어학원인 런던 스쿨이 있는 곳이다. 다행히 예전 그대로의 위치에 있었다. 당시 나를 가르쳤던 maria 선생님이 아직도 계신지 궁금했다.
입구에 다다르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오늘부터 월요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왜 오늘.
아쉬운대로 밖에서 건물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영락없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진을 찍고나서 한동안 앞에 서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한 청년이 나왔다. 그에게 나를 소개한 후, 혹시 마리아(maria)라는 선생님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하긴 14년이나 지났으니'
그의 나이를 봤을 때, 이곳에서 근무한지는 얼마되지 않아 보였다.
암튼 그에게 런던스쿨 덕에 영어가 조금이라도 늘었고, 그래서 감사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도 내 얘기를 듣더니, 사정상 문을 닫게 되어 아쉽게 되었다고 했다. 다음에 언젠가 인도를 방문하게 된다면, 다시 오겠다고 했다.
PS. 뱅갈로르에는 일부 노선이긴 하지만, 지하철(metro)이 있다. 현재 한창 공사 중에 있다. 실제 방갈로르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지하철 역사를 만드는 공사현장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MG road 역시 예전에는 없던 지하철 고가 다리가 생겼다.
PS2. 인도 남부 지방을 거쳐서 온 탓일까. 한 낮에도 뱅갈로르의 날씨가 생각보다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뱅갈로르는 내륙에 위치한 곳이어서 비슷한 기온임에도 습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마이소르 기차역>
<잠을 깨우기가 미안했다>
<뱅갈로르 기차역>
<3가지 언어로 적혀있다>
<Cubbon park>
<MG road 초입의 돌로 지은 건물. 예전 그대로다>
<지하철이 다니는 고가도로가 생겼다>
<슈퍼마켓 체인 'Food world'>
<MG 지하철 역>
<길 양 옆으로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단골집. 파(Green onion)>
<스프와 치킨 볶음밥>
<후식으로 주는 데 박하사탕 맛이 난다>
<가운데 공사 중인 건물이 KFC 다>
<Ulsoor lake>
<건물 2층에서 1:1 수업을 받았었다>
<매일 아침 릭샤를 타고 여기서 내렸다>
[지도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