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핸드폰 알람을 새벽 4시 맞춰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자정이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같이 거사(?)를 앞둔 전날은 이렇듯 잠에 쉽사리 들기가 어렵다. 겨우 잠이 들어 알람 시간보다 일찍 일어났으니, 대략 3시간 가량을 잔 것 같다.
어제 저녁 삶아둔 계란과 마지막으로 남은 식빵으로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가방에 짐을 쌌다.
예상보다 짐들이 많아서, 공간이 없어 넣지 못하는 것들은 자전거가 든 박스에 넣었다.
그렇게 자전거 박스, 패니어 4개, 배낭에 모든 짐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무게를 재봤다.
자전거 박스는 부피가 커서 잴 수가 없었고, 패니어 4개는 약 19.5kg, 배낭은 16kg 가량 되었다.
이대로 라면, 무료 수화물인 20kg 를 넘지 않으니, 별도로 추가요금은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출발 준비가 되자 짐을 하나 둘 숙소 1층 입구로 옮겼다. 자전거 박스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 계단을 통해 옮겨야 했다. 어제 예약한 대로 6시가 되자 택시 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숙소에 왔다. 그는 자전거 박스를 보더니, 숙소 직원에게 뭐라고 얘기했다. 곧이어 숙소 직원이 내게 와서 말하길 '만일 이 것을 싣고 가다가, 경찰에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 된다'고 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벌금이 얼마죠?”
그는 택시기사에 물어보더니, 200 루피라고 했다.
“만일 경찰에 적발이 안되면, 벌금을 안 내도 되는 거죠?”
그는 그렇다고 했다.
짐과 자전거를 밖에 세워둔 택시에 실었다. 다행히 승용차가 아닌, 승합차여서 자전거 박스를 실을 수 있었다. 출발!
이른 시간이라 도로에는 차량 뿐만 아니라, 경찰도 없었다. 30분 여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카트에 싣고서 공항으로 가려는데, 택시 기사가 부른다. 200루피를 달라는 것.
'경찰이 없지 않았냐고 하니' 그도 할 말이 없는지 그냥 돌아서서 간다.
공항 출입문에 서있는 경찰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입구를 통과해 들어갔다. 이로써 1차 관문은 클리어.
앞으로 더 중요한 2단계와 3단계 스테이지를 넘어가야 알마티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다.
티켓팅을 하려고 보니, 공항에 있는 티켓팅 부스들은 모두 인도 공항사들 뿐이다. 전에 네팔 갈 때 생각을 떠올려보니, 그때는 indigo 라는 인도 공항사 였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내가 탈 이스타나 항공은 오전 8시에나 open 한단다. 앞으로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짐 무게를 체크하는 곳에서 자전거 박스를 재보니, 29kg 가 나온다. 항공사 약관에 나와있는 단일 짐의 최대무게 32kg 는 넘지 않는 수치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ATM 기기를 찾아봤는데, 예상대로 시티은행 ATM 기기는 없고, 인도 로컬 은행의 ATM 기기만 몇 대 있을 뿐이다.
당초 시간보다 1시간 늦은 9시가 되어서야 air 이스타나(istana) 항공의 창구가 열렸다. 별도의 티켓팅이 없이 바로 체크인을 시작했다. 카트를 밀고 줄의 맨 끝에 섰다. 항공사 직원이 다가오더니, 박스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물었다.
'bicycle!'
그는 자전거 박스를 보더니, '일반적인 자전거 박스보다 크다'고 했다.
'내 자전거가 일반적인 자전거보다 조금 커요'
그는 이대로는 싣기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리 출력해간 항공사 수하물 약관과 이에 대한 답변을 받은 메일을 보여주었다.
'Bicycles
Air Astana can carry bicycles that have been properly packed for transportation. This will include the removal of pedals and deflation of tyres. For bicycles of all sizes Air Astana applies a special sporting rate of 10,000 KZT (50 EUR) for international routes and 4,000 KZT for domestic routes. There is a limit of one bicycle per passenger and you can pre-book with your agent or via special.services@airastana.com.
특히 “all sizes” 라는 부분을 강조해서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가능한지 물어봐야 한다며, 자전거 박스를 사진으로 찍어 어딘가로 보냈다.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단번에 ok 되기는 힘들겠지'
1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출력한 수화물 약관과 메일 내용을 읽어봤다.
만일 항공사에 안된다고 했을 시에, 나 또한 할말은 있었다. 수화물 약관에는 크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자전거 수화물에 대한 특별 요금만 내면 모든 크기(all size)의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오늘 비행기를 못타게되는 건 아닐까 내심 초조했다. 잠시후 한눈에 봐도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등장했고, 항공사 직원이 나를 불렀다. 나의 유일한 무기인 수화물 약관이 적힌 종이를 최대한 잘 보이게끔 들고서 걸어갔다.
책임자에게 다시한번 이 박스 안에는 자전거가 들어있으며, 수화물 약관에는 크기에 상관없이 특별 요금만 내면 문제가 없다는 문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후 책임자와 직원이 한참을 대화 한 후, '실어도 좋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특별 요금을 3795 루피로 알고 있었는데, 5.8% tax 가 붙는다고 했다. 총 3975 루피(rs3795 + 5.8% = 총 rs3975). 가지고 있던 돈이 3979 루피였는데, 하마터면 모자를 뻔 했다. 이렇게 해서 2단계도 클리어.
마지막 3단계. 이제 기내 수화물 검사를 할 차례다. 부피가 작고 무거운 짐들을 우선적으로 배낭에 넣다보니, 자전거부품이나 자물쇠, 배터리 등이 대부분이었다.
단번에 통과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검사원이 배낭을 가리키고는 열어보라는 손짓을 한다.
하나하나씩 꺼내, '이것은 자전거 체인이고, 이것은 자전거 자물쇠이고, 이것은 배터리….'
그가 '왜 이렇게 배터리가 많냐고 묻는다'
'카메라와 GPS, 손전등에 필요하거든요'
이렇게 그를 설득하고 나서야 검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최종 미션 클리어!
무사히 탑승 Gate 까지 갈 수 있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고나서야 정말 인도를 떠나는 지 실감이 났다.
긴장이 풀려서 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출발한지 1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깨서 창밖을 바라보니, 비행기 아래로 끝도 없이 펼쳐진 설산들이 보인다. 네팔에서 설산을 제대로 봤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여기는 어디일까. 핸드폰 GPS 켜서 위치를 확인해봤다. 아프가니스탄이다. 구글지도 상에는 길이 없이 산만 표지되어 있다. 해발고도가 얼마나 높으면 지금같은 여름철에도 눈이 그대로 있을까.
현재는 갈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런 멋진 산들이 있다니.
3시간 반을 날아,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다. 짐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자전거 박스만 보이지 않는다.
'뭐지 안온 건가?'
얼마 후, 어떤 사람이 카트에 자전거 박스를 실어 걸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그는 박스의 주인을 찾는 듯 보였다.
다가가서 내 것 이라는 제스쳐를 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돈을 달라고 했다.
'헐…'
그는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카자흐어 또는 러시아어를 했지만, 그가 원하는 건 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1달러짜리 지폐를 한장 줬다.
출입문을 나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환전 그리고 유심카드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환전소를 찾는 일은 수월했지만, 유심카드를 파는 곳을 알기 어려웠다. 모든 간판이 카자흐스탄어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많이 진열된 가게에 들어가 기존에 사용하던 유심카드를 보여주고는 구입할 수 있었다.
이후 택시를 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왔다. 어제 air b&b 호스트가 알려준대로 eco 택시라고 적힌 곳으로 갔다.
가격을 물어보니, 15km 까지는 2000 텡켄, 이후는 1km당 145 텡켄 이라고 했다. 숙소가 있는 아파트까지 3500 탱켄으로 흥정하고 짐을 실었다. 자전거가 들어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가능했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쭉 뻗은 길이 이어졌다. 확연히 분위기가 인도와는 다르다. 쾌적하다고 해야 하나. 오가는 차량의 운전자들을 보면, 절반은 나와 비슷한 얼굴의 동양인, 나머지 절반은 서구의 얼굴을 한 서양인이다.
숙소 근처에 왔을 때, 정확한 위치를 알기위해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택시기사를 바꿔주었다.
아파트 입구 앞에서 호스트를 만났다. 그녀의 안내로 숙소가 있는 단지에 도착했고, 짐을 내렸다.
자전거박스와 짐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옮기고 나서, 호스트가 숙소 이곳저곳을 설명해주었다.
냉장고, 에어콘, 전기 레인지와 주방이 완비되어 있었다. 새 아파트나 다름이 없었다. 이곳은 여러 동의 아파트가 모여있는 단지였다.
근처 슈퍼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들어왔다. 어제밤 잠을 제대로 못잔데다가 오늘 많은 우여곡절이 있던 탓에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서 잠이 들어버렸다.
<아프가니스탄의 설산들>
<출입국 카드. 입국과 출국 시에 제시해야하기 때문에 여행 중 잘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