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록까지는 약 44km.
호록은 인터넷이 되는 꽤 큰 도시(?)로 익히 들어 알고 있어서 가까워질수록 길의 상태가 좋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시내에 들어서기 전까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벌써 며칠째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왼쪽 강 건너에 두고 달리는지 모르겠다. 타지키스탄과 경제 규모가 비슷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풍경은 강 양쪽이 별반 다르지는 않다.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다.
이따금 요란한 자동차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다보면 이상하게도 달려오는 차량이 없다. 바로 강 건너 아프가니스탄 도로에서 달리는 차량의 소리다. 이 정도로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8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호록 역시 강을 사이에 두고 산 능선을 따라 많은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들과 비교해보면 집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것 정도가 차이였다.
숙소는 내가 물어본 대부분의 자전거여행자들이 추천했던 pamir lodge 로 정했다. 시내 중심이 아닌 약간 떨어진 곳에 있어 찾는데 약간 애를 먹긴 했지만, 듣던 대로 일반적인 숙소에 비해 대규모 였다. 키르기스스탄에 이어 타지키스탄도 마찬가지지만, 숙소를 정할 때 선택의 여지가 좁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수도를 제외한 지방의 중소 규모의 도시의 경우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춘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세식 변기가 있고, 온수 샤워를 할 수 있고, 게다가 무선 인터넷, 적당한 아침식사 정도.
'이거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다보면, 이러한 조건이 꽤 높은 기준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숙소는 거의 정해져 있다고 보면 된다. 무르갑에서는 파미르호텔, 그리고 이곳 호록에서는 파미르 롯지가 그렇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곳에서 다양한 외국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 각지로부터 온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를 볼 수 있고, 그들과 얘기 나눌 수 있다. 우연히 이 곳에서 반가운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다. 작년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성 자전거 여행자.
키르기스스탄 비쉬켁에 이어서 벌써 3번째다. 무릎이 안 좋아져서, 사리타쉬에서 이곳까지 차로 이동해왔다고 했다. 지금은 다른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분 말고도 차량으로 여행한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숙소에서는 도미토리(8$), 베란다(5$), 텐트(5$)로 각각 나뉜다. 처음에는 도미토리를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이층 침대식이 아닌 그냥 일반 방 형태고, 총 7명이 함께 쓴다는 얘기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짐 정리를 하고, 동네 구경에 나섰다. 호록에서는 이틀 동안 묵을 예정이라 시내쪽으로는 내일 나가 볼 생각이지만, 무엇보다 요 며칠간 먹지 못했던 과일을 먹고 싶었다. 근처 마가진(상점)에서 본 과일은 수박과 토마토가 전부였다. 사과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토마토를 사서 돌아왔다.
저녁이 되면서 더 많은 여행자들이 숙소로 찾아들었다. 한창 저녁 시간 대, 전기가 나갔다. 밖을 보니 다른 곳에 불빛이 보이는 걸로 보아 숙소만 정전이 된 듯 했다. 한참동안 전기가 나갔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기가 들어왔을 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여기는 타지키스탄. 참 적응력이라는게 무섭다. 이후로도 몇 번이고 전기가 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PS. 호록에 가까워오면서 부터 사과가 달린 나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제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건가. 스위스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커플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현지주민으로부터 사과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이건 순전히 스위스 커플 때문이다. 지금껏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여성 혼자 자전거를 타는 경우는 보지 못했는데(여성 커플 라이더는 봤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관심과 배려는 나 같은 남성 솔로 여행자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PS2. 호록 이후 두샨베로 가는 루트를 알아봤다. 콸라이쿰에서 나뉘어지는 북쪽 루트와 남쪽 루트.
북쪽 루트는 3000m 가 넘는 고개를 넘어야 하고, 여름에서 늦가을까지만 개방되는 도로다. 남쪽 루트는 지금까지 처럼 아프간 국경을 강을 끼고 가는 루트다. 높은 고개는 없지만, 북쪽 루트에 비해 거리 100km 이상 멀고, 여행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공사 구간이 있어 중국 트럭들이 많이 지나다닌다고 한다. 여행자들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 북쪽 루트를 이용하고, 두샨베에서 호록까지 대략 7~8일 정도 걸렸다고 했다. 도로의 상태를 보면, 별반 큰 차이는 없는 듯 하다. 시간 단축을 위해 북쪽 루트로 정했다.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44.804 km
누적 거리 : 17593.097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