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같은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으로 향했다. 이미 한번 와본 터라 GPS 의 도움없이 갈 수 있었다. 대사관 입구 옆 의자에 신청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우선 대사관 맞은편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의 앉아있는 경비원에게 여권을 보여주면, 대기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준다. 차례가 되면, 그가 이름을 부르고 대사관 입구로 들어가는 식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중, 낯 익은 얼굴이 있었다. 같은 숙소에서 묵고 있었던 스위스 여행자였다. 그와는 어제 저녁에 잠깐 얘기를 나눴었다.
그는 캠퍼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중이었다. 스위스에서 오프로드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까지 운전해서 오다니. 그의 자동차는 정말 단단함에 틀림없다.

그에게 투르크메니스탄 비자에 대해 물어볼 사이도 없이 그의 이름이 불렸고,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나 또한 이름이 불려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가지고 왔는지 물었다. 어제 복사했던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비자가 출력된 A4 용지를 보여줬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color copy' 였다. 흑백이 아닌 컬러로 복사를 해오라는 것.
어디서 할 수 있냐고 물으니,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근처에서 할 수 있단다.

'참으로 까탈스럽다. 흑백으로도 충분해보이는데.'

그의 말대로 'color copy'를 하기위해 대사관을 나왔다. 대기 중인 타지키스탄 사람의 도움으로 '컬러 복사로 해주세요' 라는 말을 타지크어(타지키스탄 언어)로 종이에 적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스위스 여행자가 대사관에서 나왔다.

'어떻게 됐어? 잘 접수했어?“

그의 표정으로 보니, 뭔가 문제가 있었던 듯 하다.

'일단 접수는 했는데, 이상해 일주일 후에 메일로 코드를 보내주겠데. 국경에서 그 코드를 알려주면, 통과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아는 어떤 호주 사람은 하루 만에 비자를 받았다고 하던데.
비자 규정에 대한 룰이 전혀 없는 것 같애, 그냥 random 이야'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는 접수 한거야?'
'아니 직원이 color copy 를 하라고 해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을 찾아가야해'
'그것봐, 나는 color copy 를 제출하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직원이 아무말도 안했어. 정말이지 random 이야. 내 생각에 비자신청이 거부(refuse) 될 것 같애.
'만일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건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서 러시아를 통해 카스피해를 돌아서 갈 생각이야.'

고맙게도 그가 차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까지 바래다 주었다.

'행운을 빌어'
'너도'

복사점에 들어가 타지크어로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이란, 우즈베키스탄비자가 붙은 여권 페이지를 복사했다. 컬러복사는 별다른게 아니고, 스캔을 한 후, 이미지를 출력하는 방식이었다.
프린트 상태가 좋지 않아, color 로 출력된 결과물은 흑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덜 선명했다. 아무튼. 다시 찾아간 대사관의 직원은 color copy 출력물을 보더니, 'ok' 라고 했다.

그리고는 신청서와 빈 A4 종이를 줬다. 그러면서, 벽에 붙인 샘플(sample) 처럼, 경유비자 신청서를 자필로 적으라고 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5일간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을 거쳐 투르크메니스탄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비자가 발급될 수 있도록 협조바랍니다'

암튼 시키는 대로 적고는 사진 한장을 붙여 직원에게 건넸다.
그는 달력을 보더니, 'after one week' 에 오라고 했다. 이것으로 비자가 승인된 것은 아니다. 결과 여부는 그때가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다.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일주일이니,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10 일이나 2주였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 대사관을 나왔을 거다. 여권을 돌려받았다(일주일 뒤에 다시 가지고 가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green bazzar 에 들러, 뽈롭(기름 볶음밥)과 스프(지난번에 먹었던 닭볶음탕이랑 똑같은)를 먹었다.

PS. 추석을 맞이하여, 숙소에 있는 아시아 여행자들끼리 저녁을 함께 먹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일본, 한국 이렇게 5명이서. 나라는 다르지만, 아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뭔지모를 연대감이 생겼다(확실히 그런거 같다).

식사를 마치고, 스웨덴, 슬로베니아, 서양 여행자들이 합세하여 근처 커피샵에 갔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각 나라마다 사는 얘기들. 특히 임금과 노동 그리고 복지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부러워했고, 남한보다 북한에 더 관심있어 했다.
나라와 인종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가 잘 구축된 나라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에는 차이점이 없었다.

PS2. 일본 배낭 여행자부부로부터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수수료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5일 통과비자에 무려 70달러. 이렇게까지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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