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일차 - 오늘도 쉽지 않았어

키시나우를 떠나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짐싸고, 오전 10시 반 무렵 숙소를 나왔다. 숙소 키 보증금으로 받은 50 레브로 부식을 살까하다가, 우크라이나 돈으로 환전을 했다.

키시나우 시내는 길이 좁은 데다가, 일방통행인 구간이 많아 걸어가면서 금방이지만, 일반 차량의 경우, 뱅글뱅글 돌아서 가야 하기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수도이긴 하지만, 크지 않아서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시내를 벗어나자 터키에서 보던 3,4차선의 도로가 나타났다.

'와~ 왠일이지'

하지만 10 여 킬로미터를 달리다가, 우크라이나 국경쪽으로 방향을 꺽자마자 포장 상태가 좋지않은 1차선 도로로 바뀌었다. 이후 업 다운이 심한 언덕길이 이어졌다.

숙소에서 우크라이나 국경까지는 60여 킬로미터 거리. 절반인 30여 킬로미터 지점을 달리고 있을 때 쯤, 갑자기 'STOP' 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뭐지?'

저 멀리 국경 군초소 같은 건물이 보이고 앞에는 총을 든 군인이 보였다. 어떤 건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도앱을 살펴봤다. 알고보니, '트란스니스트리아' 라고 하는 UN 의 미승인 국가로서 몰도바로 부터의 독립을 원하며 추진 중이라고. 정식 국가가 아니지만, 몰도바와의 국경이 존재했고, 우크라이나로 가기 위해서는 이 나라(?)를 거쳐가야만 했다.

군초소에 도착해서, 보통의 육로국경을 넘듯이 직원에게 여권을 건넸다. 여권 신분조회를 하더니, 어디로 갈 건지를 물었다.
일반적으로 입국 도장을 찍어주는데, 특이하게도 종이쪽지 한 장을 여권에 꼽아서 돌려줬다.
그렇게 입국을 하고,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남은 30여 킬로미터를 달렸다.

주변으로 보이는 모습은 몰도바의 시골 마을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로 사정은 더 좋지 않았다. 3~4 m 간격으로 길에 홈이 파져있어, 지날 때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가해졌다. 때문에 속도를 줄여야했고 오르막구간이 별로 없었음에도 더 오래 걸렸다(대략 3시간).

산 중턱에 있는 국경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이곳을 이용하는 차량이나 관광객을 볼 수 없었다.
직원에게 여권을 건네니, 아까와 똑같이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다.

“(국경 너머를 가리키며)우크라이나”
“이봐 그쪽은 우크라이나가 아니고 루마니아라구”
“(웃으면서)그래?”

지난 2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웃어 넘기는게 가장 좋다. 괜히 따지거나, 화를 내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런 일(?)은 특히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육로 국경(대체로 규모가 작다)에서 일어난다. 입출국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할일이 없고, 그러니 직원들은 논다(자기들끼리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이런 와중에 짐을 잔뜩 실은, 신기하게 생긴 자전거를 타고오는 사람이 심지어 외국인이라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 장난이나 쳐볼까?'

떠올려보면, 이런 비슷한 경험을 캄보디아-태국 국경에서 했다. 당시엔 처음이라 당황했고, 화도 내고 그랬다. 참고로 똑같이 출입 여권심사를 하는 공항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듣기로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좀 더 젠틀하다고.

여권 심사 후, 짐 검사는 4개 중에 하나의 패니어를 열어 육안으로만 확인하고 끝났다. 그렇게 비승인 국가 출국 완료.

우크라이나 출입국 사무소로 갔다. 이 곳 역시 분위기는 앞선 '트란스니스트리아' 쪽 국경과 다르지 않았다.
도착해서 직원에게 여권을 건네니, 주변에 있던(놀고 있던) 다른 직원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보통의 국경에 있는 x ray 검사기가 없는 건지(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모든 짐을 꺼내서 보여달라고 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이들이 요구하는 것 뿐만아니라, 내가 먼저 다 열어서 보여주는 게 낫다. 그들이 요구하지 않은 주머니 안에 든 젓가락과 숟가락까지 보여준다든가.

뭔가 신기한 물건을 기대했던 그들은 점차 흥미를 잃은 듯 했고, 이후 입국 도장을 받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앞으로 넘어야할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도 쉽지는 않겠구나'

이후 이어진 길의 포장 상태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넘어 텐트를 치려고 했지만, 물이 없어서 상점을 찾아야 했다. 돈도 인출을 해야 했고.
지도 앱 상으로 마을까지는 10 여 킬로미터 거리. 도착해서 유일한 ATM1)기기에서 인출하는데 성공. 비자카드는 안되서 마스터카드로 했다. 우즈벡에서도 이랬는데.
근처 상점에서 부식을 사서 마을을 나왔다. 이때가 오후 8시. 해가 길어져서 여전히 주변이 환했다.
야영할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면서,

'오늘도 쉽지 않았어'

PS. 우크라이나 국경사무소를 빠져나와 언덕길에서 끌바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차량 한대가 와서 서고, 한 사람이 내리더니,

“어디서 오셨어요?”

인상착의를 보니, 한국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얘기 나눠보니, 우즈베키스탄사람이고 한국에서 일을 했었다고. 우크라이나에 일을 하러 왔단다.
이런 곳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헤어질때, 내가 아는 유일한 말인, '앗살라무 알라이쿰'을 하니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PS2. 바라건데 내일은 도로 상태가 나아졌으면 한다. 일정 간격으로 파인 홈 때문에 스포크와 림에 충격이 가해져,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PS3.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이후 어디로 갈 건지를 여러번 물어봤다. 러시아로 갈 계획이지만,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관계를 생각해서 벨라루스라고 답했다.

<왕복 2치선. 하지만 우회전(DUBASAIR 방향)하자마자, 1차선 도로(아래 사진)로 바뀌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입국 시에 받은 쪽지. 출국 시에 반납한다>



<반가운 인연, 그의 친구 2명과 함께>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92.23 km
누적 거리 : 25353.765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


1)
한국인여행자로부터 인출수수료가 없는 3곳의 은행에 대해 들었는데, 이곳이 그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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